조선 오백 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 지식인과 천재 전략가가 같은 시대에 같은 문중에서 태어나 같은 임금을 모시고 살았다. 성학집요와 격몽요결, 율곡문답을 저술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율곡 이이와 임진왜란의 국난을 막아낸 충무공 이순신이다.
율곡과 충무공은 황해도 개풍군 덕수리를 본향으로 하는 같은 덕수 이씨로 약 20촌 정도의 먼 친척뻘이다. 덕수 이씨는 현재 총 인구수가 5만8천 명 정도 되는 이씨 중에는 흔하지 않은 가문이다. 율곡이 이조판서로 관리들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을 때 같은 덕수 이씨 문중의 하급 군관이던 이순신을 만나 보고 싶어 했으나, 이순신은 율곡이 이조판서의 직에 있는 동안에는 만나 볼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율곡과 이순신은 같은 선조 때 출사하여 벼슬을 하였지만 선조와는 애증의 관계로 얽혀 있다. 선조는 영리하였으나 상당히 이기적이었다. 율곡은 우국충정에서 선조를 위해 성학집요를 지어 바쳤고 율곡문답을 통하여 훌륭한 정책을 제안하였다. 율곡은 사림 세력이 동인, 서인으로 갈라진 정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정치의 중심에 있는 임금이 확고하지 않고서는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절감하면서 선조에게 성학집요를 지어 바친 것이다.
1587년 북병사 이일은 녹둔도 전투 패전의 책임을 이순신에게 덮어씌우고 이순신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장계를 선조에게 올렸다. 그러나 선조는 "한 번의 실수로 사형은 과하다"며 이순신의 목숨을 살려주고 백의종군하게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1년 전인 1591년에 선조는 종6품 정읍현감이었던 이순신을 단숨에 7계급을 뛰어넘어 진급시켜 정3품 전라좌수사에 임명하였다. 부제학이던 학봉 김성일 등 많은 신하가 선조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반대하였으나, 선조는 요지부동 이순신을 신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졌으나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은 연전연승하며 남해 해상권을 장악하여 일본의 보급로를 끊고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적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냈다. 이러한 공으로 선조는 1593년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였다. 1597년 적의 간계에 말린 선조는 이순신에게 칠천량으로 출전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어명을 거부한 이순신은 한성으로 압송되어 투옥되었다. 그때 우의정 정탁의 상소로 이순신은 또다시 사형을 면하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율곡과 같은 뛰어난 경세가와 이순신과 같은 천재 전략가를 신하로 두고서도 조선이 부국강병하지 못하고 임진왜란과 같은 국가적 대참사를 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임금이 올바른 판단력과 통찰력, 직언과 참언을 구별할 줄 아는 혜안과 넓은 도량이 있었다면 그 시대는 조선의 국운이 상승할 수 있는 중흥의 시대였다. 그러나 선조는 사림 세력이 동인, 서인으로 분열되어 서로 적대시하고 모함하여 인재가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도 막지 않고 이를 오히려 조장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국민을 통합하지 못하고 분열되게 하였으며 종전 선언만 외치는 사이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었고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여 발사하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난과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고 코로나19 재난지원금 과다 지급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 경제의 침체는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위기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역할이 대한민국의 앞날에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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