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중음악] 아날로그 감성 물씬…경북대 앞 음악 맛집 ‘우드맥’

20년째 LP바 운영 정효진 씨…“음악‧낭만 아는 사람들과 소통하니 행복하다”

정효진 씨가
정효진 씨가 '우드맥'에 진열된 LP음반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문을 여니 1970년대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 놓은 듯한 어두컴컴한 공간. 블루스 기타리스트 비비킹(B.B.King)의 'Don't Answer the Door'가 오래된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왔다. 손님은 단 1명. 바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손님과 가게 사장은 작은 맥주병을 들고 음악 이야기를 나눈다. 20일 오후 8시 경북대 정문 앞 LP바 '우드맥'의 모습이다.

정효진(61) 씨가 '우드맥'을 연 것은 2003년. 내년 2월이면 2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그는 정확하게 2월 어느 날이 개업일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단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즐기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겉멋 싫어하는 그의 성격이 날짜 따위는 무심히 잊게 했듯 내부 또한 소박하다. 작은 테이블 2개와 8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 하나, 4명쯤 앉을 수 있는 바가 전부다. 벽면은 단골 손님이 그려줬다는 벽화와 오래된 앨범 재킷으로 채워져 있다.

이곳의 자랑은 5천 장이 넘는 LP판이다. 1960, 70년대 올드팝‧올드락 음반부터 재즈, 블루스, 7080 가요, 1990년대 김광석 음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모두 정 씨가 고등학생 때부터 모은 것들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하나뿐인 인생인데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 그동안 모은 LP판을 밑천삼아 우드맥을 열었죠. 가게 이름은 1967년 결성해 지금까지도 활동하는 영국 록밴드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에서 따왔습니다."

듣고 싶은 음악은 컴퓨터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시절이었기에, 처음엔 어려움도 컸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며 단골손님이 하나 둘 생겼다. 그럴수록 정 씨는 손님 한명 한명에게 마음을 다했다. 늦게까지 남는 손님과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고, 간판 불을 끄는 새벽 1시를 훌쩍 넘긴 새벽 4시, 5시까지도 함께 했다.

이날 첫 손님인 김동욱(39) 씨는 '20년 단골'이다. 경북대 철학과 02학번인 그는 '우드맥'이 문을 열던 2003년 김광석 노래를 듣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가 음악과 LP에 매료돼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를 정도로 단골고객이 됐다. 이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두 번쯤은 이곳을 찾는다.

김 씨는 "제 전공은 윤리학 분야로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가치'와 '감정'의 상관관계에 관한 것이었는데, 음악을 매개로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며 "어느 누구보다 사장님께 박사 논문을 드렸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남자 손님 3명이 '우드맥'을 찾았다. 이들도 10여년 된 단골이었다. 수차례 신청곡을 적은 메모지가 오가고 테이블에 맥주병이 쌓여갈 즈음,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서준(44) 씨가 냉장고 앞에서 정 씨를 향해 한 마디 던진다. "형님 제가 ○○맥주 채워뒀습니다."

정 씨가 웃으며 말했다. "보세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음악‧낭만을 아는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죠."

정효진 씨가
정효진 씨가 '우드맥'에 진열된 LP음반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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