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돌아갔다는 건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육신이 돌아간 슬픔보다 온기(溫氣)를 더는 느낄 수 없어서 아련함 그리움 애절함이 곧잘 아른거리거든요. 하루가 다르게 아이들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 온기가 사무치게 그립답니다. '이 모습 보셨으면….'
간밤 집사람에게 아버지 기일을 물었어요. 10월이잖아요. 가만 손꼽아 봤어요. 아버지 가신지 꼭 10년이더라고요. 어느새 10년인가 하고 은솔이 나이를 더듬었죠. 아버지가 그리도 어여삐 여기던 첫 손주 심은솔. 이 애가 나고 넉 달 만에 가셨잖아요.
그 은솔이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형‧형수 갓난 은솔이와 문인송(文人松‧400년 된 소나무로 직선거리 100m 이내 필자의 부친을 비롯해 문인 세 분이 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에 올라 소나무만큼 싱그러운 웃음 머금고 사진 찍은 일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아버지가 은솔이랑 눈 맞춤하던 장면은 언제 보아도 미소짓게 해요. 기분이 좋아져요. '손녀바보' 아버지 모습이 숨김없이 담겼죠.
아버지, 기쁜 소식이 셋 있어요. 형네가 결혼한 지 10년 만에 집을 장만했어요. 지난주 이사하고 엊그제야 짐 정리를 끝냈다며 새집 풍경을 찍어 보내왔어요.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간 것이라 깨끗하고 널찍하고 좋더라고요.
은솔이한테는 독방을 주고 은별‧예솔이는 함께 쓰라고 방을 주었다는데, 애들이 밤에 잠을 안 잔다네요. 집이 너무너무 좋다고 말이죠. 은별이와 예솔이는 아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대느라 정신이 없대요. 왜 안 그렇겠어요. 녀석들 모습이 눈에 선하시죠?
어머니는 형이 전하는 말을 듣고 그랬다고 하세요. "애비 노릇하느라 고생했다."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했어요. 숱한 곡절이 생략된 속정 깊은 어머니 특유의 말씀이잖아요.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아버지는 우리 3남매 꼬맹이 때부터 앉혀놓고 그러셨잖아요. "너희는 셋 다 똑같이 잘나야 한다." "너희한테 물려줄 재산은 10원도 없다." 워낙 어릴 때부터 듣던 말이라 어느 때부터는 그러려니 했던 말인데, 형이 결혼할 때 "집은 둘이 알아서 하라"는 언명을 듣고 '나도 대비를 해야겠구나' 생각했지요.
아버지 말씀을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형제라도 각자 솥 걸어 뒤처지면 남만 못하게 된다. 그러니 열심히 살아 동생은 누나형만큼 누나형은 동생만큼 잘 살아야 한다. 돈은 때가 되면 스스로 벌어 귀한 줄 알고 아껴가며 잘 써야 한다. 세간 늘려가는 재미는 돈 주고도 못 산다. 인생은 스텝 바이 스텝이다. 뭐든 스스로 하는 거다. 생은 저마다 가꾸는 거다.'
이번에 형네는 가전도 신접살림처럼 새로 들였다고 해요. 형도 형수도 목소리가 낭랑만하더라고요. 스스로 이뤘다는 성취감의 발로 아니겠어요. 아버지 유지(遺旨)가 잘 전해진 것이기도 하고요.
아버지 기뻐하실 나머지 둘은요. 몸이 좋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었던 누나가 몸을 추스르고 새 학기부터 강단에 다시 서게 됐다는 거예요. 누나는 강의하는 게 그렇게나 보람되고 기쁘다네요. 저는 아버지 9주기에 맞춰 아홉 번째 신간이 나와요. 이번에는 1000쪽 넘는 분량이에요. 따끈따끈한 신간 들고 찾아뵐게요. 내내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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