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을 바람 솔솔~ 함께 노래해요!" 시각장애인 선생님과 함께하는 버스킹 눈길

대구 동촌중학교 밴드 '대일밴드', 시각장애인 교사가 이끌어
학업 스트레스 해소시켜주고자 창단, 성취감·자신감 듬뿍 얻어
학교폭력예방·금연 캠페인에도 앞장서, 안내견 인식 개선도…

시각장애인 허경호 선생님(앞줄 맨 왼쪽)이 이끄는 대구 동촌중학교 교내 밴드
시각장애인 허경호 선생님(앞줄 맨 왼쪽)이 이끄는 대구 동촌중학교 교내 밴드 '대일밴드'. 배주현 기자

7일 오후 대구 동구 동촌유원지. 잔디밭에서 버스킹 공연이 시작되자 산책하던 시민 30여 명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무대에 선 건 동촌중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교내 밴드 '대일밴드'. 척 봐도 어린 티가 나는 학생들이었지만 악기를 다루는 손놀림은 여느 성인 밴드에 못지 않았다. 이들이 자작곡 '금연송'을 연주하자 관객들이 흥겹게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대일밴드에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동촌중 영어교사이자 시각장애인인 허경호(41) 씨가 학생들과 함께 직접 만든 밴드여서다. 처음엔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풀어주려고 시작한 밴드였지만, 어느새 인기를 얻으며 학교 폭력 예방 등 공익 활동으로 이어졌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돈독한 유대감도 덩달아 따라왔다.

허 씨가 교내 밴드를 만든 건 지난 2019년. 아이들이 공부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색다른 진로 탐색의 기회도 주자는 마음이었다.

학생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대일밴드'라는 이름 역시 학생들이 직접 지었다. 특별한 의미 없이 '반창고'를 연상해 지은 이름이었지만 열정만큼은 여느 프로 밴드 못지 않다. 벌써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일밴드에는 허 씨와 14명의 학생들이 소속돼 있다.

밴드 멤버 김시엽(15) 군은 "기타를 배우고 싶어하면서도 번번이 실패하는 아버지에게 기타를 쉽게 가르쳐주고 싶어서 밴드에 들어왔다. 아버지와 내 기타 실력 모두 많이 늘어서 뿌듯하다"고 즐거워했다.

바쁜 학업 속에서 대일밴드는 '학생 밴드'로서의 가치관도 잊지 않았다. 학교폭력 예방, 금연 홍보 등 캠페인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허 씨와 아이들은 금연 캠페인을 위해 직접 트로트 노래를 개사해 만든 금연송으로 교내 축제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도교사인 허 씨가 시각장애인인 만큼 안내견 인식 개선에도 앞장선다. 허 씨는 대구 최초로 안내견을 입양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공연 때마다 안내견 '여울이'를 동행하는데,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안내견을 접하고 익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날 열린 버스킹 공연에도 함께 온 여울이에게 시민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허 씨에게도 장애를 딛고 학생들과 함께 음악 활동을 하며 세상에 공헌한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허 씨는 "학생들은 악기 연주로 성취감을 얻고, 나 역시 장애를 이겨내고 제자와 함께 공연을 해낸다는 자신감을 얻는다"면서 "특히 여울이에게 시민들이 많은 사랑을 주신다. 안내견을 자주 접해야 차별도 사라질 수 있는 만큼, 접점을 계속 만들어가면 일상 속 차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7일 대구 동촌유원지에서
7일 대구 동촌유원지에서 '대일밴드'가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다. 배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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