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소련·중공 못지않은 文 정권의 ‘좋은 통계’

정경훈 논설위원

1930년대 소련 국가계획위원회 고스플란(Gosplan) 사무실에서 통계실장 채용 면접시험이 있었다. 면접관들이 첫 번째 후보에게 물었다. "동지, 2더하기 2는 무엇이오?" 후보의 대답 "5입니다". 면접관 "동지, 혁명적 열정은 높이 사오만, 이 자리는 셈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오". 후보는 정중하게 문 밖으로 안내됐다.

두 번째 후보의 답 "3입니다". 면접관 중 가장 나이 어린 간부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 놈을 체포하라! 혁명의 성과를 깎아내리다니! 이런 식의 반혁명적 선전 공세는 좌시할 수 없다." 후보는 경비에게 끌려나갔다. 세 번째 후보 "물론 4입니다". 면접관 중 가장 학자 티가 나는 간부가 후보에게 형식 논리에 집착하는 부르주아적 과학의 한계에 대해 따끔하게 연설을 했다. 후보는 수치감으로 고개를 떨군 채 걸어 나갔다. 마지막 네 번째 후보의 대답. "몇이길 원하십니까?"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저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 소개한 구 소련의 농담이다. '소련=지상 천국'을 부정하는 모든 사실의 왜곡·삭제·은폐라는 국가 작동 시스템을 통렬히 비꼰 것이다. 농담이라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두 번째 후보가 당한 것과 똑같은 일이 있었다.

소련은 1937년 인구조사를 했다. 그리고 결과는 비밀에 부치고 인구조사위원회 위원 전원을 체포했다. 죄명은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인구를 줄이는 배신 행위를 저질렀다'였다. 조사위원들이 농업집산화가 초래한 엄청난 기아 사망자를 그대로 인구 집계에 반영한 것이다. 농업집산화와 '계급 청소'의 시기(1929~36년)에 비자연사한 소련 인구는 1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중공(中共)도 다르지 않았다. 대약진운동(1958~62년)으로 굶어 죽고 병들어 죽은 사람만 3천600만 명이다. 당시 식량부 부부장(차관)이었던 주보핑(周伯萍)은 인구가 수천만 명이나 줄었음을 확인하고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보고했다. 저우언라이의 대답 "당장 모든 자료를 소각하라". 이후 중공 중앙은 다시는 인구 통계를 공표하지 않았다.('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 송재윤)

감사원의 감사에서 문재인 정권의 통계 조작 마각이 드러나고 있다. 문 정권은 소득 분배 지표가 최악으로 벌어지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가 명확해지자 정책을 바꾸지 않고 통계청장을 바꿔 버렸다. 새 통계청장은 이에 "좋은 통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그대로 됐다. 조사 방법을 바꿨고 분배 지표가 개선된 '좋은 통계'가 나왔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참으로 '나쁜 통계'다. 조사 방식 변경으로 변경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수 없게 됐다. 소득 분배가 나아졌는지 나빠졌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삶의 질' 지표에서는 폭등한 주거비를 삭제해 개선율을 높이기도 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문 정권 내내 집값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젊은 세대는 속절없이 '영끌'의 포로가 됐다. 그러나 대통령은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고 국민의 염장을 질렀다. 그 근거는 정부 통계였다. 하지만 민간 통계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서울 아파트값의 경우 문재인 정부 임기를 통틀어 민간 통계의 상승률은 정부 통계보다 최대 4배나 높았다. 민간 통계가 체감(體感) 진실일 것이다. 그 격차의 비밀은 '문 정부 청와대와 국토교통부의 압력'이라는 증언이 언론 보도로 나오고 있다. 문 정권은 통계에서 소련·중공과 다를 게 없었던 셈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