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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어떤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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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 수필가(미니픽션작가)

윤영 수필가(미니픽션작가)
윤영 수필가(미니픽션작가)

나는 매일매일 어떤 풍경을 본다. 그곳은 내가 사는 6층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내려다보면 30m도 채 떨어지지 않아 보이지만 내려가면 구불구불한 궤적을 그린다. 달리 보면 정상 궤도를 이탈해 보인다고 할까. 아파트 곳곳에 비치된 정자와 노인정을 두고 굳이 쓰레기 범벅이 된 공터의 버려진 의자에 무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 처음에는 그 모습을 보는 나의 감정이 결코, 간단치 않았다. 수시로 그 이유를 유추하다 문득 그들에겐 일종의 광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으로 터인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는 일이 익숙했을 거라는. 결국, 자연의 흐름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관찰이라는 단어에 각을 세울 필요는 없지만, 틈틈이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 나는 창가에 턱을 괴고 그들이 끊임없이 펼치는 몸짓과 표정을 주시한다. 뱉어내는 소리는 어차피 6층에 오르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귀를 쫑긋해봤자 말소리에 물을 섞어 놓은 듯 분석이 불가능하다. 차츰차츰 무언극을 본다는 느낌이랄까. 자연과 어우러져 펼치는 공연을 보는 관객은 오롯이 나 홀로다.

바람 부는 대로 돛을 달고 오다 보니 그럭저럭 여기까지 잘 왔다는 표정들. 더러는 정적과 허무가 한 바퀴 돌고 나간다. 애써 순환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뒷짐 진 그 공간은 적당히 느긋하다. 평행선을 벗어나 발등을 찍고 철망 아래를 고개 숙여 기었다 한들 어떤가. 어느 귀퉁이인들 바람들지 않은 곳 있을까. 짓무르게 살았으면 어떻고 오동나무 장에 비단이불 쟁여놓고 살았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랴.

시간의 속성이나 인간의 속성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이 아닐까. 시계를 고장 내고 신기술로 노화를 줄여도 시간의 흐름과 노년으로 가는 길은 멈출 수가 없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는 일쯤이야 도가 텄다는 표정. 그러기에 거꾸로 매달려도 사람 사는 이승이 낫다는 것을 익히 알아 호시절을 보내고 있는. 느릿느릿 흩어지고 어느 순간 슬그머니 모여 남은 시간을 잣는 풍부한 표정이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그렇다고 늘 판토마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늙은 개를 데리고 바지 뒤춤에 손이라도 넣은, 체구가 다부진 할아버지라도 출현할 때, 만사에 호들갑인 뿔테 안경을 쓴 할머니가 움직이는 날. 밤새 사라진 농작물의 범인이라도 유추하려고 소리칠 때. 토라진 두 할멈이 만나 할퀼 머리채는 없지만, 게거품을 물고 목청을 높일 때. 이러한 생생한 광경을 목격하곤 하는 날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처럼 살아 있는 소란은 때론 묵언 수행보다 더 나를 수행에 이르게 한다.

아직은 맞닥뜨리지 못한, 나와는 별개인 듯한 '어떤 풍경'.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황량한 공터에 허방을 만든 노인들. 정열도 강렬도, 한때의 절절함도 먼 나라의 언어인 듯 보내놓고 적당한 영역에서 해바라기를 즐기는 그들. 볕을 이고 와선 공터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구부정한 등골을 뉘며 허기진 삶을 풀어내고선 볕을 지고 간다.

어떤 연속선의 한쪽 끝에서 걸어와 한쪽 끝을 밟으며 시작과 끝을 여물게도 매듭짓고 잇대어 사는 한 무리의 노년들. 그 위로 때까치들이 한참 휘젓고 날아갔다. 하늘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왔다. 곧 어두워졌고 서쪽 하늘에 별이 뜰 것이다. 아득한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노인들은 또 달게 잠 들것이다. 서늘한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겠지만 그 순간은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구만리장천 어떤 풍경 너머에선 또 엉겅퀴꽃 피고 민들레가 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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