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명의 교차로 실크로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타키 바자르와 카라반사라이의 변신
오아시스 품은 실크로드 교차점…대상들의 그늘이자 상점인 '타키'
30~40km마다 숙박시설도 갖춰…무료 식사·여물까지 극진한 대접
현재는 조명 밝힌 상가들로 즐비…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부하라의 상징인 높이 47m의 칼란미나렛은 사막의 등대 역할을 한다.
부하라의 상징인 높이 47m의 칼란미나렛은 사막의 등대 역할을 한다.

까마득한 옛날, 실크로드는 동서양을 잇는 교역의 길이었다. 그 사막의 중간 지점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부하라는 오아시스 도시로 발전해 왔다. 황량한 유목지대를 거쳐 부하라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우뚝 솟은 거대한 이슬람 건축물 앞에 서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높이 47m의 칼란미나렛이다.

이 첨탑은 예배시각을 알리는 종교적 기능과 함께 사막의 실크로드 대상들을 위한 등대였다. 과거 실크로드 상인들은 하루종일 낙타들을 몰고 저녁노을이 불그스레하게 드리울 무렵 부하라에 도착했다. 멀고 먼 사막을 건너온 이들은 이 거대한 미나렛 앞에서 무사함의 감사기도를 잠시 올린다. 그리고 곧바로 타키 바자르로 향하는 것이 순서였다.

◆부하라의 상징,타키

타키라는 이름은 둥근 지붕이라는 뜻이다. 도로의 교차로를 둥근 지붕으로 덮어 시장 역할을 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낙타를 탄 채 지나갈 수 있도록 입구와 천장은 높게 돼 있다. 타키는 둥근 돔이 여러 개 이어져 있는 모양이다. 돔 중앙에는 통풍 겸 채광을 위해 구멍이 뚫려 있어 내부는 시원하다. 가장 번성했던 16세기, 당시 타키는 전문상점의 역할을 하며 고가의 보석류와 여러 재질의 모자와 금, 비단 등을 판매했다고 한다.

교차로를 둥근 지붕으로 덮어 시장 역할을 하는 타키 건물. 그 뒤로 노을이 지고 있다.
교차로를 둥근 지붕으로 덮어 시장 역할을 하는 타키 건물. 그 뒤로 노을이 지고 있다.

다양한 인종의 상인들이 이곳에 모여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사고팔며 동서양의 중요한 정보도 교환했던 장소였다. 사실 상권의 입지로서는 매우 이치에 맞는 곳이다. 숙소가 많은 마을 동쪽에서 관광 등 볼거리가 많은 서쪽이나 북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반드시 이 교차로를 지나가게 된다. 판매 기회가 많아지도록 동선을 고려한 것이다.

수 십 마리의 낙타를 이끌고 오랫동안 걸어온 대상들. 뜨거운 사막을 지나왔으니 지칠 대로 지친 낙타에게도 그늘이 필요했을 것이다. 둥근 지붕을 갖춘 타키는 부하라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대표적으로 카펫과 금속세공품을 팔고 있다. 새 모양이 조형적으로 표현되도록 금속공예 기술로 만든 가위도 진열되고 있다.

타키 내부의 돔 중앙에는 통풍 겸 채광을 위해 구멍이 뚫려 있어 시원한 느낌이 든다.
타키 내부의 돔 중앙에는 통풍 겸 채광을 위해 구멍이 뚫려 있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이국인을 보는 상인들의 눈빛이 빛난다. 이곳의 점원들은 어릴 적부터 타키 부근에서 자랐기 때문에 장사 실력도 상당하다. 이들의 다정함에 이끌려 어느새 가게 안쪽에서 상품을 만지며 지갑을 열게 될지도 모른다. 이들이 누구인가, 대부분이 상거래의 귀재 소그드인의 후예들이다. 지금은 유라시아 대륙 곳곳으로 흩어져버린 소그드인은 실크로드의 중개무역을 담당했던 민족이다.

정교한 금속공예 기술로 만든 새 모양의 가위도 타키에서 팔고 있다.
정교한 금속공예 기술로 만든 새 모양의 가위도 타키에서 팔고 있다.

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입에 꿀을 먹이고 손에는 아교를 바르게 했다'고 한다. 달콤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한번 손안에 들어온 재물은 절대 놓치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렇게 이들의 탁월한 장사꾼 기질은 5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실크로드에 풍부한 국제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비잔틴을 연결시키며 비단 및 종교, 과학, 사상을 실어날랐다.

카라반사라이 앞의 마드라사는 일반 상가처럼 다양한 조명을 밝혀서 부하라의 밤을 연출하고 있다.
카라반사라이 앞의 마드라사는 일반 상가처럼 다양한 조명을 밝혀서 부하라의 밤을 연출하고 있다.

◆30~40km마다 카라반사라이 들어서

한때는 한반도 신라 땅까지 진출했던 증거가 경주국립박물관에 있다. 소그드인의 특징인 뾰족한 모자를 쓴 토용들이 전시실에 있다.타키에서 나와 조금 걸어가면 우즈베키스탄 국립고고학아카데미의 발굴현장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땅 밑에 파묻혀 있던 터를 발굴하였기에 지면보다 낮은 곳에 모습을 드러낸 유적지이다. 사막을 오갔던 상인들의 숙소와 목욕탕 터이다.

이제는 흔적만 남아 있지만 거리 마다 있었던 그때의 숙소와 목욕탕에는 왁자지껄하게 활기가 넘쳤을 것으로 상상된다. 여행자 숙소에 관해서 우리나라는 역참제도나 주막집의 봉놋방도 있었다. 일본 애도시대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인 슈쿠보(宿坊)가 있었다. 카라반사라이는 페르시아어의 '카라반' (caravan)과 '사라이'(sarai) 두 단어를 조합해서 생긴 단어이다. 카라반은 주로 사막이나 초원지대 등을 장거리 이동하는 상인이나 순례자 단체를 일컫는 말. 사라이는 집이나 숙소건물을 말한다.

실크로드 대상들의 숙소와 목욕탕 유적에 대한 우즈베키스탄 국립고고학아카데미의 발굴현장.
실크로드 대상들의 숙소와 목욕탕 유적에 대한 우즈베키스탄 국립고고학아카데미의 발굴현장.

단순히 쉬거나 묵고 가는 장소가 아니라, 인근 각지의 카라반들이 서로 만나 문물을 교환하는 교역 장소이기도 했다. 역로를 따라 30~40km마다 카라반사라이가 들어섰다. 그것은 낙타가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다. 구조는 안뜰이 있는 건축물의 1층은 거래소, 연회장, 말뚝, 관리인과 하인의 주거지로 사용됐다. 2층은 손님인 대상들의 숙박시설이었다. '아가'라고 불리는 책임자나 짐 운반 감독 등이 상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머나먼 이국에서 진귀한 교역품을 싣고 와서 많은 관세를 내는 상인들은 그 땅을 다스리는 유력자들로부터 극진히 대접받았다. 숙박, 식사비는 모두 무료로 제공되기도 했다. 짐을 운반하는 낙타와 말에게도 여물이 듬뿍 주어졌다. 당시 실크로드 상인들은 카라반 중에 강도들의 습격을 많이 받았다. 카라반사라이가 없었다면 유럽과 중국을 잇는 실크로드 교역의 발전도 없었을지 모른다. 권력자들의 입장에서는 먼 나라의 정세를 탐색하려 했다. 미디어가 없는 당시에 세상 돌아가는 생생한 정보를 상인들과 교환할 수 있었으니 그들을 후히 접대했을 것이다.

사막을 오갔던 실크로드 대상들의 숙소인 카라반사라이에서 전통춤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막을 오갔던 실크로드 대상들의 숙소인 카라반사라이에서 전통춤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당나라때 안국(安國)으로 불려

지금도 부하라에서 카라반사라이처럼 활용되는 곳이 있어 방문하기로 했다. 노디르 디반베기 메드레세라는 과거에 이슬람 교육기관이었던 건물로 들어갔다. 성수기에는 매일 정원에서 저녁식사를 곁들인 전통음악 연주와 춤 공연이 있다고 해서 한여름 밤 우즈벡의 춤과 음악에 빠져보기로 했다.

이윽고 반짝이는 의상에 깃털을 머리에 단 무희들이 화려하고 탄력 있는 움직임을 보인다. 부하라 여인의 유연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니 돈황 벽화에 나타난 호선무를 옮겨 놓은 듯하다. 그 옛날 실크로드 상인들이 토호들로부터 접대받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아름다운 부하라의 밤을 더 느껴보려고 밖으로 나와 거닐었다. 카라반사라이 앞의 마드라사는 모두 야시장처럼 상가로 바뀌었다. 아치형으로 열린 각각의 점포들은 다양한 색상의 조명을 밝혀 밤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멜로디가 들린다. 일본의 세계적 신디사이저 연주자 '키타로'의 '카라반사라이'가 흘러나오다니... NHK의 대형 다큐물 '실크로드'의 OST이다.

필자가 개설하고 있는 영남대 평생교육원의 인문강좌 실크로드 강의에도 시작 전 언제나 이 멜로디를 흘려 분위기를 유도한다. 놀라운 점은 각 상가의 건물들이 대개가 3, 4백 년이 넘은 것으로 부하라 구시가지는 1993년 이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국 당나라 때 벌써 이곳 부하라에 대해 편안할 안(安)자를 넣어 안국(安國)으로 불렸다.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에도 자신이 잠시 머물렀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실크로드의 시간 여행 속에서 편안한 부하라의 밤은 이렇게 깊어 간다.

박순국 언론인
박순국 언론인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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