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TK, 수도권에 치이고 부산에 밀리고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지난달 6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이즈 비기닝"(BUSAN is Beginning)을 외쳤다. 부산항에서 열린 부산 시민 간담회에서다. 이 행사에는 대통령실 참모진과 부처 장관, 국민의힘 지도부는 물론 재계 총수까지 총동원됐다. 4월 총선을 의식한 빅 이벤트다. 윤 대통령은 이날 부산을 축으로 영호남 남부권 발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과 범정부 거버넌스, 규제 혁신 특례 지원 등을 약속했다. 가덕도신공항 적시 개항,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 북항 재개발 신속 추진 등 지역 현안도 걱정 말라고 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2021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의 가덕도 방문 장면이 오버랩된다. 당시 문 대통령은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니) 가슴이 뛴다"고 했다. 이후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은 일사천리였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부산 민심에 민감하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양대 정당은 부산 표심의 유동성을 잘 안다. 부산 시민들은 실리에 따라 투표한다. 수틀리면 지지 정당을 갈아 치운다. 부산상의 회장을 지낸 경제계 인사는 "부산은 지역 이익을 위해 정치인, 경제인들이 잘 뭉치고, 결집된 목소리를 낸다. 정치권이 부산을 소홀히 하면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심판한다"고 했다.

부산의 정치적 역량은 압도적이다. 선거를 지렛대 삼아 지역 현안을 풀어낸다. 그런 저력이 대구에 예정됐던 삼성자동차 승용차 부문을 차지했고,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을 무산시켰으며,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만들었다. 정부와 여당의 관심이 부산에 쏠리면서 대구·경북(TK)이 위기에 놓였다. '보수의 본산' TK는 윤석열 정부 출범의 일등 공신이다. 그러나 허울뿐이다. 실속이 없다. 윤 대통령 등 역대 여권 정치인들은 대구 서문시장에서 "기를 받고, 힘을 얻어 가는 곳"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럼, 주거니 받거니로 대구에도 기와 힘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대구는 그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정치권은 '잡은 물고기'(TK)에 신경 쓰지 않는다. 물살을 휘젓고 다니는 물고기를 쫓기에 바쁘다.

이번 총선의 승부처는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이라고 한다. 특히 국민의힘엔 수도권 표가 절실하다. '서울 49개 지역구 중 우세 지역 6곳'이란 판세 보고서는 국민의힘엔 쇼크였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는 그런 절박함에서 출범했다. 국민의힘은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나설 것이다. 'TK 희생양설(說)'이 나돈다. 과거에도 수도권 표를 위해 TK가 물갈이 대상이 됐다. TK에선 누구를 꽂아도 당선되니, 주저할 이유가 없다. TK 정치력 쇠락의 원인이다.

여당의 총선 공약이 수도권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메가시티 서울'과 수도권의 대형 SOC(사회간접자본) 등 '그랜드 플랜'이 잇따를 것이다. 이대로면 TK는 수도권에 치이고, PK에 밀린다. 지역에는 현안들이 쌓여 있다. 대구경북신공항 조기 개통, 달빛철도 특별법 통과, IBK기업은행 이전, 2038 아시안게임 유치, 국가산업단지 조성과 각종 SOC 사업 추진 등 모두 난제들이다. 강력한 정치력이 필요한 사업들이다. TK의 정치 환경은 불리하다. 그러나 낙담은 이르다. 이성적으로 과거를 비판하되, 의지로 미래를 관철해야 한다. 지역민들의 냉철한 현실 인식이 중요하다. TK 현안이 홀대받고 공천이 불공정하면, 저항하고 심판해야 한다. 호락호락하면 TK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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