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안동 유림들 뿔났다

엄재진 북부지역 취재본부장
엄재진 북부지역 취재본부장

국가 백년지계를 만들어 갈 선량들을 뽑는 선거일이 밝았다.

기후 위기와 저출산, 경제와 민생 등 오늘 선거로 뽑힐 국회의원들의 임기 중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이 내놓은 정책과 공약을 통해 오늘 하루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의미 있는 날이다.

하지만, 안동의 유림들은 이번 총선 경기 수원정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후보가 '퇴계 선생 성관계 지존'이라 언급한 것을 전해 듣고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안동 유림들이 뿔났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국회를 찾아 항의하고 후보 사퇴를 외쳤다. 안동이 고향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과와 대표직 사퇴로 불똥이 번졌다.

김준혁 후보는 2022년 출간한 자신의 책에서 퇴계 선생에 대해 "성관계의 지존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은행나무가 밤마다 흔들렸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내용을 적었다.

안동 유림들은 '근거 없이 허무맹랑한 내용' '만인이 우러르는 선현을 모독한 행위'라며 김준혁 후보의 사퇴와 사과, 이재명 당 대표의 대표직 사퇴까지 촉구하고 나섰다.

퇴계 이황 선생은 성균관 '문묘'(文廟)에 배향된 18현 가운데 한 분일 뿐 아니라 '겨레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당시 일본 제국주의 학자조차 존경을 표했다. 중국 경우 주자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였기 때문이었고, 일본 경우는 일본 현대 기본 행동 양식에까지 퇴계의 '경(敬) 철학'을 깃들게 한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문제와 관련해 '퇴계선생언행록'에는 "선생이 일찍이 임금의 명을 받고 의주에 한 달간 머물렀으나 전혀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평양에 들렀을 때 평양 감사가 이름난 기생을 곱게 꾸며서 잠자리에 보내 주었으나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렇듯 퇴계 선생이 학문과 인격, 일상생활에서의 독실한 실천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추앙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안동 유림 대표들은 선거 하루 전날인 9일 국회를 방문해 강하게 항의했다. 민주당 당사를 찾아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수원정 김준혁 후보 선거사무소도 찾아 사과하라고 소리쳤다.

같은 날 퇴계 후손 20여 명도 안동시청 앞에서 김준혁 후보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퇴계 후손들은 안동 예안이 고향인 이재명 당 대표에 대해 부도덕한 후보를 공천한 책임을 물어 당 대표직과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퇴계 선생이 기거했던 고향 집 어디에도 은행나무는 없다. 상계 문중 퇴계 종택에도, 퇴계 태실이 있는 도산 노송정 종택에도 김준혁 후보가 '밤마다 흔들렸다' 언급했던 은행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근거가 있을 수 없는 이 황당한 주장은, 도덕·예의·염치 같은 아름다운 덕목은 무시되고, 한낱 유튜브에서 시시껄렁하게 술자리 안줏거리로 전락시켰다.

한국 정신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며, 도덕의 사표인 선생을 근거 없이 모독한 '언어폭력'이다. 게다가 퇴계 선생을 현생에서 따라 실천하려는 안동 유림과 안동 사람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처사다.

선거 결과를 떠나서 김준혁 후보와 민주당은 자존심에 상처 난 안동 유림과 안동 사람에게 사과하는 게 마땅하다. 민주당과 이재명 당 대표의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사과하기를 바란다.

경기 수원정 민주당 김준혁 후보의 퇴계 관련 폄훼 책 기술과 관련, 9일 퇴계선생 후손들이 안동시청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엄재진 기자
경기 수원정 민주당 김준혁 후보의 퇴계 관련 폄훼 책 기술과 관련, 9일 퇴계선생 후손들이 안동시청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엄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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