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당신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후보를 뽑았습니까

최병고 서울 취재본부장
최병고 서울 취재본부장

22대 총선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그동안 숱한 선거 때마다 공천 파동이나 후보 자격 시비, 막말 파문은 늘 있어 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그중에서도 '역대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전국을 돌며 발전 계획을 내놓고 의대 증원 이슈까지 터졌지만 관심은 그때뿐이었다. 정책·비전은 실종되고 막판까지 헐뜯기만 난무했다. 22대 총선이 '정치 혐오만 키운 선거'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아 씁쓸하다.

돌이켜 보자. 그동안 총선 때 막말은 단골 메뉴였다. 2020년 미래통합당은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유가족 망언'으로 혼이 났고, 2012년 민주당은 지지율 고공 행진을 벌이다 나꼼수 멤버 출신 김용민 후보의 저급한 막말로 뭇매를 맞았다. 이번 총선에선 국민의힘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이 '난교 발언' 등으로 공천이 취소됐고, 더불어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은 목발 경품 발언으로 역시 공천이 취소됐다. 하지만 민주당 김준혁 후보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시대와 상대를 가리지 않는 각종 막말로 이화여대 총동창회를 비롯해 유림 단체, 예비역장성 단체, 유치원연합회, 여성 단체 등 각계로부터 사퇴 요구가 쇄도했다. 그의 상당수 막말들은 우리 역사와 정통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얼굴이 부끄러워지는 것은 유권자의 몫일까.

위선적 행태도 논란이었다. 민주당 양문석 후보는 대학생 딸 명의로 사업자 대출을 받아 31억원 강남 아파트를 사는 데 썼다는 의혹으로 금융 당국 조사가 진행 중이다. 같은 당 공영운·양부남 후보는 '아빠 찬스'로 꼼수 증여했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조국혁신당 비례 1번 박은정 후보는 배우자가 다단계 사기사건을 변호하고 역대 최고 수임료를 받은 게 밝혀졌는데도 '제대로 전관예우 받았으면 수임료가 더 컸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과연 이들이 분배와 정의를 최고로 치는 정당의 일원이라 할 수 있나.

하긴, 꼼수 위성정당을 탄생시킨 준연동형 비례제를 막지 못한 때부터 우려는 예견됐다. 한국의 특수한 정치 지형과 제도적 빈틈을 타 친북 성향의 후보 등이 줄을 섰고, 재판받는 중인 인사가 당을 만들어 대표가 됐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탄해 줄 사람들을 골라 노골적으로 공천을 주기도 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저자인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기와 대니얼 지블랫은 미국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지탱해 온 두 가지 규범을 제시했다.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 및 이해'와 정당에 주어진 제도적 권리를 오로지 당의 이익에만 활용하지 않는 '절제'가 그것이다. 이런 규범이 미국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가드레일로 작용하면서, 당파 싸움이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양 극단으로 갈라져 혐오가 판치는 정치, 자기편은 감싸고 남의 편은 헐뜯는 현실, 오직 정치적 유불리만 노리는 기회주의적 행태는 유권자들을 우울하게 한다. 대파 875원, 일제 샴푸 논쟁 같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언제까지 봐줘야 할까.

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유권자의 시간은 이제부터다. 국민 눈높이에 부족했다며 한 표를 호소하던 그들이 제대로 약속을 지키는지, 민의의 대표에 어울리는 언행을 실천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4년 후에 또 이런 선거를 치르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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