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월세는 제때 낼까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전통시장이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소년 시절, 유독 그 짓을 즐겼다. 세상 구경에 그보다 좋은 공간은 없다. '그러다가 장돌뱅이 된다'는 어른들 타박에도, 배회(徘徊)는 계속됐다. 생선 좌판에서 들리는 비린 말들, 서로 자기 손님이라고 다투는 거친 말들, 실없이 주고받는 무용(無用)의 말들은 '세상의 맛'을 알려줬다.

지금도 가끔 거리를, 시장을 기웃거린다. 풀어진 기억을 담는다. 걷다 보면 가게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국밥집, 손님이 언제 다녀갔는지 모를 꽃집, 간판이 여러 번 바뀐 분식점, 고물상과 구분이 어려운 철물점…. 마음이 아린다. 월세는 꼬박꼬박 내고 있는지, 팔지 못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는지. 주제넘게 괜한 걱정을 한다. 밥때에 손님 몇 있는 걸 보면, 내가 더 반갑다.

자영업자들은 고달프다. 지난해 말 기준 335만8천여 명이 받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천110조원이다. 3개월 이상 갚지 못한 연체액은 27조3천833억원. 1년 새 49.7% 늘었다. 외식업체 폐업률은 '환난(患難)의 시절'보다 심각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외식업체 81만8천867개 중 폐업한 곳은 17만6천258개(폐업률 21.5%)다.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2022년 평균치보다도 6%포인트 높다. 숫자는 자영업자 신산(辛酸)의 일부만 드러낼 뿐이다.

친구 A는 별난 식객(食客)이다. 그의 밥집 선택은 별나다. 다들 '웨이팅 맛집'을 찾는데, 그는 복닥거리는 집을 피한다. "우리나라 식당의 음식 맛은 거의 평준화됐다. 공개된 래시피가 많고, 조리 수준도 큰 차이 없다. 그래서 프랜차이즈보다 로컬 식당, 대형보다 작은 식당, 손님 많은 곳보다 조용한 식당을 찾는다." 그의 지론(持論)이다. 이왕이면 장사가 덜 되는 집에서 팔아 주자는 뜻이다. 자신도 자영업자인 A의 연대 의식이다.

"못나고 흠집 난 사과만 두세 광주리 담아 놓고/ 그 사과만큼이나 못난 아낙네는 난전에 앉아 있다/ 지나가던 못난 지게꾼은 잠시 머뭇거리다/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 꺼낸다/ 파는 장사치도 팔리는 사과도 사는 손님도/ 모두 똑같이 못나서 실은 아무도 못나지 않았다."(조향미의 시, '못난 사과') 못난 사람들의 동병상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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