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빼 먹을 곶감이 없다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지난 1990년 1월 22일 오전 정치권을 발칵 뒤집는 사건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민주정의당),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청와대 회동 후 방송 카메라 앞에 함께 서서 합당 및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이른바 '3당 합당(三黨合黨)' 또는 '보수대연합(保守大聯合)'이 성사된 순간이다. 이렇게 원내 의석 217석의 민주자유당이 탄생했고,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을 거쳐 현재의 국민의힘으로 명맥이 이어졌다.

당시 정치학자들은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보수대연합(영남·충청)이 '호남'(평화민주당 70석)을 포위함으로써 한국 정치의 보수 우위 구도가 30년 이상 고착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심지어 '평화민주당(DJ)'에서조차 정권교체나 국회 다수당 등극은 요원해졌다는 자조가 나왔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이 비례 위성정당 의석을 합쳐 180석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파면으로 보수 정당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절치부심한 국민의힘은 2년 후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다. 보수 정당이 기력을 회복하고 체면도 세우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달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다시 참패의 쓴맛을 봤다. 야당에 192석을 내주고 108석을 얻어 겨우 개헌 저지선을 확보했다. 4년 전 총선 때와 같은 뚜렷한 '악재'가 없었고 현직 대통령을 배출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받아 든 성적표라 더욱 충격이 컸다. 당내에선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선거'도 어렵다는 공감대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보수 정당이 이렇게 쪼그라드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보수 정당이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을 배출하는 동안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었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다만 '외환위기'와 '현직 대통령 파면'은 보수 진영에 뼈아픈 사건이다.

아울러 사람과 돈이 '서울'로 몰리는 수도권 일극 체제가 강화되면서 기존 '지역주의'의 맹위도 예전만 못 한 실정이다. 말 그대로 '최대 접전지'인 수도권 성적이 전국 단위 선거의 최종 결과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당'이 대중주의 영합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정치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정책 메뉴'를 개발하는 동안 보수 정당은 도끼 자루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공천 학살'을 주고받으며 '아군공격'(팀킬·Team Kill)에만 골몰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이에 보수 진영에서도 1990년 보수대연합의 '약발'이 다 되었으니 보수 정당의 미래를 위한 자구책(뉴라이트운동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수 정당의 지병(持病)은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다. 고관대작 출신들이 당을 금배지를 달기 위해 입는 유니폼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의힘 당직자가 소개한 에피소드는 아주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당의 강세 지역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중진이 공천을 받지 못해 4선 도전에 실패한 후 다음 총선에 도전장을 내밀자 현역 의원이 중진의 복당을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내용을 살펴보니 중진의 제명 이유가 당비 장기 미납이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