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54>'윌리엄 더글러스와 김종삼의 뮤즈, '애니 로리'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스코틀랜드 풍경.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스코틀랜드 풍경.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5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나무와 숲이 무성하기 위해서는 햇빛 외에도 비바람이 잦아야 한다. 비바람이 나무와 숲을 더욱 푸르고 깊게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를 고스란히 음악에 대입해도 좋을 것 같다. 음악도 풀꽃처럼 단순하고 꾸밈이 없고 소박할수록 더 많은 것을 아우르고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애니 로리'(Annie Laurie)는 윌리엄 더글러스(1672~1748)의 시에 스코틀랜드 작곡가 앨리샤 스코트(Alicia Scott, 1810~1900)가 곡을 붙인 스코틀랜드 가곡이다. 이 곡의 주인공 애니 로리(1682~1764)는 실제 인물로 스코틀랜드 귀족의 딸이었다. 더글러스가 사랑했으나 부모의 반대로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 벌써 이 곡에 담긴 사연 만으로도 곡조가 이렇게 애잔한 여운을 남기는지 까닭을 알만 하다.

"저 새벽이슬 내려 빛나는 언덕은/ 그대 함께 언약 맺은 내 사랑의 고향/ 참사랑의 언약 나 잊지 못하리/ 보고 싶은 애니 로리 내 맘속에 살겠네// 여름날의 바람같이 또 풀 이슬같이/ 그대 음성 내 귓가에 속삭여 주도다/ 고요한 그 음성 나 잊지 못하리/ 사랑하는 애니 로리 항상 같이 살겠네."

'애니 로리'는 번안이 되어 음악 교과서에 한동안 실려 있었다. 이 곡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맑고 고운 선율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두 도막의 소박한 형식에 실려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잘 전달한다. 가사와 선율에 담긴 진정성 때문에 해외에서는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하는 장례식에서도 많이 불려진다. 시와 노래에 실리면서 윌리엄 더글러스의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는 사랑으로 남았고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그들의 사연을 대신하는 노래가 되었다.

김종삼은 한국 시단에서 가장 순도 높은 순수시를 쓴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그의 시는 음악의 절대적 순수성을 지향하며 배음 효과, 환상성 등을 통해 시와 음악 두 세계의 공명을 추구한다. 그중에서도 '애니 로리'를 소재로 삼은 시가 두 편이다. 김종삼은 '그리운 안니 · 로 · 리', '앤니로리'에서 애니 로리를 사라진 존재, 순수한 영혼의 상징으로 보고 그러한 존재가 살고 있는 이상향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비운의 애니 로리가 아름다운 선율로 승화하는 것으로 죽음에 대한 초월의식을 나타낸다. 또 낙원의 이미지를 표방하는 노랑나비를 통해 찰나적 생의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름다움과 죽음의 친연성을 감각적으로 제시한다. 불안정한 생일수록 한결같이 아름답고 한결같이 마음이 고운 이들이 산다는 저 너머의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 이 노래에 드리운 비애는 그곳을 모르고 갈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노랑나비야/ 메리야/ 한결같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한결같이 마음이 고운 이들이/ 산다는 곳을/ 노랑나비야/ 메리야/ 너는 아느냐."('앤니로리' 전문)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