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이제부턴 정치를 하겠다"는 대통령의 일성에 일말의 기대가 생겼다. 최악의 정쟁과 바닥으로 질주하는 민심 이반에 종지부가 찍히려나 했다. 집권 후 첫 여야 영수회담 자리였으니 총선 참패가 입에는 쓰나 몸에는 좋은 명약인 듯했다. 그러나 지난 다섯 달을 돌이켜 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민생에 골몰하고 반대 세력과 소통하며 국민이 환호하는 리더십은 과욕이었다.
오히려 대통령이 국민의힘 연찬회에 불참했다거나 당대표 쪽은 빼고 밥을 먹었다는 식의 불협화음이 귓가를 뒤덮었다. 최저치를 기록한 국정 지지율(20%, 한국갤럽)은 추석 민심의 클라이맥스였다. 지도자가 바뀌지 않으면 민심이 돌아서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위기의 보수 리더십의 다른 한 축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다.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총선을 지휘하고 패장의 처지에서 다시 집권당 대표에 올랐다. 이러한 역설은 고갈된 보수 리더십과 한동훈의 상품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73년생 한동훈'이라는 브랜드는 386을 위시한 기성세대와의 차별을 표상한다. 그리고 기울어진 당정 관계를 복원하라는 지지층의 기대감의 발로이다.
실제로 야당이 의회를 지배하는 정국에서 원활한 당정 협력 없는 소수파 정부의 성공은 가당찮다. 이런 점에서 한 대표의 지지율 급락은 그의 브랜드 파워와 실적이 하찮다는 성적표다. 한국 보수 정치의 가장 큰 과제는 수평적 당정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기울어진 당정 관계는 집권 세력 내부의 견제와 균형의 붕괴를 뜻한다.
그로 인해 국정 농단으로 탄핵의 나락으로 굴렀고, 민심 이반으로 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 외부 인사를 수혈해서 가까스로 정권을 탈환했다. 그러나 대통령 앞의 집권당은 더욱 왜소해졌고 당정은 수직적 관계로 악화되었다. 작금의 보수 정치는 자생력을 잃은 채 야당의 탄핵연대나 방탄동맹에 대항하는 방어기제에 불과하다.
검사 출신 한동훈의 부상은 지지층의 두 갈래 열망이 접합된 결과였다. 피의자 신분의 야당 대표에 맞서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라는 열망 그리고 대통령의 실책을 상쇄하며 합리적 대안을 추구하라는 열망. 당대표 선출에서 전폭적인 지지는 이를 방증한다. 현재 보수 정치 혁신의 키는 한 대표가 쥐고 있다. 그러나 권력의 추와 민심은 그에게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왜일까?
우선 의제 설정(agenda setting) 실패에서 기인한다. "국민 눈높이"로 시작하는 그의 언어 습관에는 전략적 디테일이 빠져 있다. 제3자 특검과 의료 개혁 같은 중대 이슈를 기세나 진정성만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쾌감을 줄지언정 엇박자를 불러일으킨다. 중요한 건 지뢰를 제거한 뒤 작전을 수행하는 문제 해결 능력이다.
다음으로 집권 전반부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시기상조다. 더욱이 국정의 위기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집권 세력 분열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대통령과 당대표의 지지율이 동시에 추락한 주원인이 여기에 있다. 집권당 대표는 또 다른 국정 책임자로 국정 지지율을 반등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차기 대선 후보로 중도층을 견인하는 전략은 그 뒤의 일이다.
마지막으로 원내의 정치 문법에 적응해야 한다. 한국 정당은 원내 중심 정당으로 원외의 대표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진다. 더욱이 개헌 저지선에 턱걸이한 의석수를 감안하면 현역 의원 세계에 강하게 뿌리내려야 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원총회와 초선 일색의 최고위원회 그리고 뒷짐 진 다선 중진을 조율하는 정치력은 온전히 한 대표의 몫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서로에게 난제다. 두 리더십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계속되면 국정 지지율 10%대는 시간문제다. 그것은 탄핵에 준하는 식물 정부의 등장을 뜻한다. 모름지기 위기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정치를 하겠다"는 윤 대통령과 "국민 눈높이"를 추구하는 한 대표의 실천은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 답은 수평적 당정관계를 정립해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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