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밖에서 큰소리가 들린다. "의사 xx들 겁을 상실했어. 서비스하는 자세가 엉망이야!" 영문을 몰라 자초지종을 듣고 설명을 해주려니 막무가내다.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손발이 떨린다.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환자를 만나고 난 후, 다음 환자를 진료해야 되는데 해꼬지는 하지 않을지 불안과 답답함이 가라앉지 않아 진료에 힘이 든다. 다음 환자는 무슨 잘못이 있어 평온한 상태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걸까?
몸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과 의사와의 사이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어서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다. 자극적인 말들로 갈라치기를 서슴지 않고 악마화 작업에 여념이 없는 일부언론과 나라님들의 은덕으로 결국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될 뿐인데 말이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의 경험을 작품에 담아낸 것으로 유명한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결혼에 관한 질문을 한다. "아버지, 행복한 결혼을 위한 조건이 뭘 까요?" 그녀의 아버지는 간결하게 대답한다. "짧은 기억력이지."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감내해야 되는 일들이 많아 그녀 아버지의 간결한 대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살아가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본의 아니게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 이럴 때 짧은 기억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함께 산다는 건 눈이 나쁜 사람처럼, 기억력이 아주 나쁜 사람처럼 그렇게 헤쳐 나가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짧은 기억력을 발휘해야 될 때가 어찌보면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많이 발생한다. 본의 아닌 실수, 누구의 잘못도 아닌 상황들 때문에 발생한 일과 마주했을 때 절실히 짧은 기억력이 필요하다. 나쁜 의도를 가진 말, 거칠게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을 들었다면 이를 따질 것인지 짧은 기억력을 발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유명한 많은 운동선수들은 실수한 플레이를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미식축구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짧은 기억력에 대한 개념이다. 경기 중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고 이 실수가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짧은 기억력을 가지고 다음 플레이에 집중하는 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짧은 기억력이 비난받아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지혜로움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신이 아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좋지 않은 경험이 다음 진료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짧은 기억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또, 필자는 항상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오직 양질의 진료를 위하여 좋은 것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좋은 것만 보려고 애쓴다. 의사인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나를 찾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기억력을 발휘해서 잊어야 할 것들을 잘 잊는 것. 오래 붙들지 말아야 할 감정들을 빨리 떠나보내는 훈련이 필요하며, 그래서 짧은 기억력이라는 축복과 지혜로움을 좀 더 가까이 둘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우동화 대구 올곧은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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