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받아든 아버지들이 있다. 슬픔 속에서도 그들은 삶을 건네는 결정을 내렸다. 자식의 숨결이 어디선가 이어지고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오늘도 상실의 아픔을 다독이며 견뎌내고 있다.
◆ 10번의 유산 끝에 얻은 아들
"지금 의사 좀 봐야 해요! 빨리요!"
2010년 8월 21일 밤 10시. 환자들이 눈을 붙인 시간 서울대병원 병동에서는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들 희찬이의 숨소리가 끊긴 걸 알아차린 아버지 홍주 씨의 절규였다.
호출을 받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동으로 허겁지겁 뛰어왔다. 세 살배기밖에 안 된 희찬이의 가슴에는 의료진의 큼지막한 손이 덮였다.
'하나…둘'
심장 마사지를 반복하는 손끝. 희찬이의 생명을 붙잡을 유일함이라 믿었기에 홍주 씨는 차마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었다. 작은 가슴이 세게 짓눌릴 때마다 여린 몸이 부서지는 건 아닐지 두려움이 차올랐다.
병상이 흔들릴 정도로 응급처치가 이어졌지만 희찬이는 심정지로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희찬이의 입과 코에는 말기 암 환자에게나 꽂힐 법한 호스들이 셀 수 없이 달렸다. 홍주 씨는 "단순 감기로만 생각했는데 심정지라니 믿을 수 없었어요. 어렵게나마 얻은 귀한 아들인데 절망적이었어요"
희찬이는 홍주 씨 부부가 열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아이였다. 결혼 15년 만에 품은 첫아들이었다. 그 때문에 희찬이가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리던 2007년, 친인척은 물론 이웃들까지도 한마음으로 축복해줬다. 이름도 '희망찬 삶을 살라'는 뜻을 담아 '희찬'이라 지었다.
종합학원을 운영한 아빠를 빼닮은 희찬이는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인지력이 뛰어나 알파벳 조립도 척척 잘 해냈다.
거실에 놓인 알파벳 그림에 희찬이의 손이 가지 않았던 건 이틀 전인 19일 목요일이었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감기에 걸렸다. 어학원을 운영 중인 아내가 여름방학을 맞아 학생들과 영국으로 떠났고, 홍주 씨는 홀로 희찬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던 것.
"이 어린 것이 무슨 일로 이토록 의식이 없는 걸까요..." 홍주 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희찬이 손을 꼭 잡아주는 것밖에 없었다.

◆ 장기기증이라는 소중한 가치…"아들이 이 땅에 온 이유가 있어요"
"희찬이 뇌가 많이 다쳐서 소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입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의사는 홍주 씨에게 최후통첩 같은 말을 건넸다. 심정지로 산소 공급이 끊기면서 뇌가 손상된 것.
홍주 씨는 머리를 부여잡고 자책했다. 아들의 불규칙한 숨소리를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리고 손을 썼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는 울분이었다.
희찬이가 뇌사 가능성에 접어들면서, 절차에 따라 장기기증 의사를 확인하는 '장기구득 코디네이터'가 홍주 씨를 찾아왔다. 뇌사 개념부터 기증 가능한 장기를 조목조목 읊어가는 찰나에 홍주 씨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족이라면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마련입니다. 장기기증을 동의하겠다고 하면 우리 희찬이의 생명을 포기하는 거잖아요."
면담을 뿌리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홍주 씨. 면회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자꾸만 코디네이터의 말이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면 기증할 수 있는 장기 수는 줄어든다'는 것.
열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아들을 허무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주 씨는 다시 전화를 들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우리 희찬이 장기기증 하겠습니다."
"고민이 많이 됐어요. 자식을 포기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나서 이 세상에 남지 않는다면 어떡하나 했어요. 만감이 교차했었다고 봐야죠."
6명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된 희찬이를 매일매일 그린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아들의 장기기증 결정을 후회한 적이 없다.
"삶이란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이잖아요. 희찬이가 놓아준 징검다리를 딛고 다시 살아난 이들이 모두 제 자식이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장기기증으로 아들이 승화되면서 함께 숨 쉬고 있다고 위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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