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고에 병고에 또한 민생고에 허덕이는 이 나라의 수많은 학도들 가운데서 특히 장래 국가건설을 위해 중책을 짊어지고 자라나는 제2세 국민 아동들 중에는 가정의 빈곤으로 인해 때를 놓으면서도 향학심에 불탄 마음으로 통학하는 애처로운 아동들은 춘궁기를 앞두고 그 수는 날로 늘어가고 있는 형편이라 하여 빈곤한 이 나라의 출생이 원망스러워지고 있거니와'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50년 3월 24일 자)
해방 5년이 됐어도 사람들의 민생고는 좀체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생존의 밑바탕인 의식주 해결조차 어려웠다. 무엇보다 겨울이 지나고 봄철이 되면 너나없이 먹거리를 찾아 하루하루를 걱정 속에 보내야 했다. 바로 춘궁기로 불리는 보릿고개였다. 3~4월의 춘궁기가 시작되면 배곯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보릿고개는 전해 수확했던 곡식은 다 떨어져 독이 빈 상태로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넘어야 하는 고개였다.
해방 이듬해 대구부내 직장을 대상으로 식량난으로 인한 결근율을 조사했다. 관공서가 그나마 형편이 나은 약 20%의 결근율을 보였다. 공장 등의 직원 결근율은 40%에 이르렀다. 교육기관이 포함된 학원 관련은 출근하지 않는 비율이 30%였다. 당국은 실태조사를 수시로 할 뿐 식량난을 해소할 마땅한 대책은 없었다. 배급 식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랐고 게다가 인원 부풀리기 같은 배급 비리마저 심심찮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식량난의 고통이 누구에게나 똑같지는 않았다. 발육기에 해당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학생들의 상황이 가장 참담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아예 결석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어도 대략 굶주리는 아이의 비율이 절반은 넘었다. 집에 돌아가도 식량이 없으니 밥을 굶거나 진달래꽃, 산나물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빈곤한 가정의 아이들은 춘궁기에 굶주림의 직격탄을 맞았다.

'점심을 굶고 있다는 아동 역시 약 2천명으로 보고 있는데 그들의 가정형편을 살펴보면 실로 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기에 따라 불을 본 듯한 이 결식아동 문제를 일소코저 방금 시 산업과와 급식 방법을 강구 중인데 실로 전례에 드문 일이라 않을 수 없다.' (남선경제신문 1950년 3월 25일 자)
보릿고개가 시작된 3월에 점심을 굶는 대구의 초등생은 2천명 쯤 되었다. 결식아동은 칠성, 동부, 서부, 남산학교에 상대적으로 많았다. 해방 이듬해와 비교해도 도시락을 못 가져와 주리는 아이의 비율은 그다지 줄지 않았다. 그때도 칠성학교 80%, 남산학교가 20% 정도였고 평균적으로 결식아동의 비율은 족히 절반은 넘었다. 칠성 학교의 결식비율이 높은 것은 인근에 움막 생활을 하는 전재민 등이 몰렸던 상황과 무관치 않았다. 또 결식아동의 비율이 비교적 낮은 남산학교 주변에는 상인들이 많았다.
아동 결식은 한국전쟁이 끝난 즈음에도 심각했다. 1953년 경북도내 초등학생 16만명 가운데 결식아동이 12만명 정도였다. 울릉도(80%)와 청송군(71%)의 결식아동이 많았다. 울릉도는 섬이라는 지형적인 특성으로 해방 직후부터 식량난의 고통이 유달리 컸다. 해방 이태 뒤 춘궁기에는 기아로 학교 출석생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청송도 해방 직후 아사자가 속출한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로 식량 배급이 원활치 못했던 지역이었다.
식량난은 좀체 나아지지 않고 1950년대 후반에도 지속됐다. 대구시내 43개 초등학교에서 하루 한 끼를 굶는 아이는 6천명, 두 끼를 굶는 아이도 800명이 넘었다. 굶주림과 추위에 못이긴 부랑아들이 먹을 것을 달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 손에는 책보를 들고 또 다른 손에는 깡통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전해졌다. 경북 칠곡의 왜관에서는 양식을 구하면 등교하겠다는 아이의 편지가 공개되어 식량난의 안타까움을 온 세상에 드러냈다.
그 시절 아이들의 삼시세끼는 집안 형편을 드러내는 잣대였다. 지금은 보릿고개로 굶주리는 2천명의 아이는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배곯이에 버금가는 각자도생의 세상으로 떠밀리고 있다. 어린이날이 무슨 소용이랴.

박창원 경북대 역사문화아카이브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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