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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조두진] 정치가 쓰는 판타지 소설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광복 80주년 기념식에서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나라를 팔아먹어야만 매국노가 아니다. 김형석에게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낀다. 순국선열을 욕보인 자는 이 땅에 살 자격조차 없다. 즉시 파면하라"고 주장했다.

우리 해방은 1945년 연합국의 군사적 승리와 일본 패망이 직접 요인이었다. 이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려면 다음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야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일본을 상대로 결전을 치러 이겼기에 우리가 독립을 쟁취(爭取)했나?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에 패했더라도 1945년 8월 우리가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참고로, 1945년 무렵 광복군은 560여 명(최대치 추정)이었고, 일본은 관동군만 100만 명이 넘었고, 전체 병력은 780만 명 이상이었다.

1919년 건국을 주장하며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제법과 정치학에서 규정하는 국가의 구성 요소는 영토, 국민, 정부, 국제사회의 승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것을 갖추지 못했다. 1919년 건국을 주장하는 것은 '국가' 정의(定義)마저 내 마음대로 규정하겠다는 말이다.

정권이나 정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역사를 해석하면 실제 역사는 사라지고, '역사소설(허구)'만 남는다. 사실이 아닌 '역사 판타지 소설'은 부적(符籍)처럼 마음에 위안을 줄 수는 있으나 실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1894년 11월 우금치전투에서 동학군은 부적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총알이 피해 간다고 믿고 일본군을 향해 돌진했다가 몰살됐다. 우리가 나라를 왜 잃었나. 역사와 세계 현실을 마음대로 해석·재단했기 때문이다.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는 이런 데서 느껴야 한다.

역사를 기록하고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불편하다고 진실을 외면하면 그 피해는 우리가 입는다. 독립운동의 숭고한 가치와 역사적 사실을 구별해야 한다.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의 자주 정신, 오늘의 빛나는 대한민국을 건설한 자조·자립의 기반이지, 그것이 독립의 근원이었다고 한다면 역사와 현실 왜곡이다. 그런 것이 매국(賣國)이다.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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