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民에게>
荒波(황파)에 시달리는 三千萬(삼천만) 우리 同胞(동포)
언제나 구름 개이고 太陽(태양)이 빛나리
千秋(천추)에 恨(한)이 되는 祖國秩序(조국질서) 못잡으면
내 民族(민족)앞에 鮮血(선혈)바쳐 銃血怨鬼(총혈원귀) 되겠노라.
<鄕土先輩에게>
嶺南(영남)에 솟은 靈峯(영봉) 金烏山(금오산)아 잘 있거라
三次(삼차)걸쳐 成功(성공)못한 興國一念(흥국일념) 朴正熙(박정희)는
一片丹心(일편단심) 굳은 決意(결의) 所願成就(소윈성취) 못하오면
快刀割腹(쾌도할복) 盟誓(맹세)하고 一去歸鄕(일거귀향) 못하노라.
1962년 6월 2일 자 매일신문에는 '밝혀진 박 의장의 유서' 제하 시조풍으로 쓴 유서 2수가 실렸습니다. 유서는 1961년 대구 2군 부사령관 이던 박정희 소장이 그해 5월 16일 거사를 앞두고 직접 쓴 것. '국민'과 '향토선배'에게 남긴 메시지는 비장한 결기로 가득했습니다.
'三次걸쳐 成功못한 興國一念….' 1차 거사일은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로 민심이 바닥난 직후인 1960년 5월 8일 경. 하지만 국민들이 먼저(4·19 혁명)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물거품. 4·19 혁명으로 들어선 최초 의원내각제, 민주당 장면 내각은 그러나 봇물처럼 분출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2차 거사일은 4·19혁명 1주년인 이듬해 4월 19일. 이날 대규모 집회가 소란해 지면 진압을 명분으로 군을 동원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19일은 조용했습니다. 명분은 사라지고 '거사' 소문만 퍼졌습니다.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자 결행에 나섰습니다. 3차 거사일은 약 한 달 뒤 5월 16일 . 유서는 이날을 앞두고 썼습니다.
"'혁명'이 실패해 내가 죽거든 세상에 알려 달라."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알려서는 안된다…." 박정희 소장은 친형처럼 지내던 둘째 자형에게 유서를 신신당부하고는 서울로 향했습니다. 돌아갈 길은 이미 유서로 불살랐습니다. 목숨 건 '혁명'은 성공했고, 유서는 장롱 속에 묻혔습니다.
이로써 박정희 소장은 장면 내각을 몰아내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9개 도지사는 준장들이, 9개 시장은 중령과 대령들이 맡는 군정(軍政)이 시작됐습니다. 박 의장은 공약 대로 2년 뒤 '1963년 여름'까지 '군정'을 '민정(民政)'으로 이양하고, 군인들은 원대복귀(原隊復歸) 키로 했습니다.
이런 약속을 깨고 군정을 4년 더 연장하려 하자 반대 시위가 들끓었습니다. '원대복귀'란 말은 유행어가 됐습니다. 되려 개혁 후퇴, 정책 실패, 권력욕 이란 비판이 드세자 박 의장은 군복을 벗고 직접 '민정'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1963년 제5대 대선(10월 15일)은 첫 시험대였습니다.
대선을 9일 앞둔 10월 6일, 대구 수성천(신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 유세장에 15만 인파가 운집했습니다. "대구가 야당 기질이 강하다고 합니다. 대구의 야당 기질이란 덮어놓고 반대하는 게 아닌 줄 압니다. 꼴이 되먹지 않은 데는 끝내 반항해봐야 한다는 저항의 성격이라 생각합니다…." 연설은 무뚝뚝했지만 박수 소리가 신천에 메아리쳤습니다.
투표 결과는 윤보선에 15만 6천26표차(1.55%P)로 신승. 박정희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재건·조국근대화·공업화·산업화·새마을…. 18년 장기 집권으로 박정희는 유서처럼 보란듯이 조국 질서도 잡고 흥국일념 소원도 성취해, 다시 없을 민족 중흥을 이뤘습니다.
빛나는 공(功) 뒤로 그림자도 짙었습니다. 혁명의 이름으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유신헌법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아홉 차례 긴급조치 과정에 8명이 사형 판결 하루 만에 형장의 이슬로 스러지기도 했습니다.
공도 과도 지울 수 없는 역사의 거울. 공은 과거를 빛내지만 과는 미래를 비춥니다. 12·3 계엄으로 격랑 속에 치르는 6·3 대선. 훗날 역사는 오늘을 또 어떻게 비출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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