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두진의 전당열전] 눈앞의 분란과 갈등 피하자고 법원이 법치를 포기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결과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결과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법원 판결을 정치권이 처벌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재판이 줄줄이 대선 이후로 연기됐다. 이 후보 5개 재판 중 3개(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대장동 재판, 위증교사 항소심 재판)가 대선 후로 밀렸고, 준비기일 절차 중이라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의혹과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사건' 만 진행 중이다.

법원은 재판을 연기하면서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라고 했지만, 실은 민주당의 거센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고 본다.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민주당은 3차 내란, 사법테러로 규정, 조희대 대법원장 자진 사퇴, 국정조사, 탄핵을 주장했다. 조 대법원장에게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라고도 했다. 청문회 출석을 거부하자 '조희대 특검법'을 발의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정치권이 대법원장을 상대로 특검법을 발의하거나 탄핵하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 공직선거법 상고심을 신속히 재판한 것을 "대선 개입"이라고 주장하지만,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재판을 질질 끌어온 것은 이 후보와 민주당이었다. '6·3·3 원칙'에 따라 1년 안에 끝냈어야 할 재판을 2년 7개월이나 끌어온 것이다. 그런 상황임에도 파기환송심 법원은 이런 잘못을 바로 잡기는커녕 재판을 미뤄 버렸다.

▶ 신속한 재판이 정치 중립 위반?

전국 법관 대표들이 오는 26일 임시 회의를 열고 대법원의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 사건을 유죄 취지로 신속하게 파기환송한 것이 정치적 중립을 어긴 것은 아닌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권의 공격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지도 다룬다고 하지만 무게는 대법원 비판에 실린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유력 정치인 재판을 질질 끄는 것을 문제 삼는다면 모를까, 신속재판이 어째서 문제라는 말인가? 공직선거법의 취지는 '선거법을 위반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공정한 선거를 치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반칙을 저지른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 공직선거법의 목적이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선거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재판을 미루는 것이 공정하고 법 취지에 맞다는 말인가? 당장의 혼란과 갈등을 피하려고 법원이 법치의 근간을 흔들어 버렸다.

▶ "반대 의견으로 화합 해치지 마라"

일본의 미국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이 일본 패배로 끝나고, 도쿄 전범재판이 열렸다. 일본의 제40대 내각총리대신이자 육군대신 겸 육군참모총장으로 태평양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도조 히데키(1884년 12월 30일 ~ 1948년 12월 23일)가 법정에 섰다. 그의 변호사는 도조 히데키가 미-일 전쟁을 일으킨 이유를 이렇게 변호했다.

"후퇴하거나 공격을 주저하면 부하들을 통솔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 하지 말자거나, 전쟁을 중단하자는 주장을 내면 군부 내의 화합을 지킬 수 없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는 도조 히데키 맞춤형 변명인 측면도 있다.

일본 해군은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을 반대했다. 하지만 '육군과 해군의 화합' 이라는 깨지 말아야 할 불문율, 정치권과 언론의 '하나된 일본' '대일본 제국의 영광' 이라는 논리에 묻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1884년 4월 4일~1943년 4월 18일) 당시 일본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유학했고, 미국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었다. 그는 미국이 기습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협상에 나서기는커녕, 압도적 경제력을 바탕으로 거세게 보복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과 전쟁에 반대했지만 막지 못했다.

일본이 실익도 없는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2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쟁을 질질 끌었던 것도 내부 불화를 금기시하는 문화 때문이었다. 어느 군 지휘부가 '중국에서 철수'를 주장하면 철수에 반대하는 다른 지휘부와 충돌이 불가피하고, 내부 '화(和·화합)'를 깨뜨릴 것이 두려워, 장차 큰 화(禍)를 부를 줄 알면서 침묵한 것이다.

▶ 혼란·갈등 각오하고 원칙 지켰어야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이 예정대로 5월 15일 열리고,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대법원이 재상고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확정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선거 비용 낭비는 물론, 국정 공백과 극심한 정치 혼란, 나아가 준 내전 상태에 가까운 국민 분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재판을 일정대로 진행했었어야 했다.

▶ 화(和)가 화(禍)로 번질 가능성 커

재판을 연기함으로써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데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사실상 최종 유죄 선고만 미뤄진 상황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선거 다음 날부터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 합법성과 정당성을 놓고 온 나라가 들끓게 될 것이다.

물론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민주당이 이 후보 재판을 중단하거나 면소(免訴)하는 법안을 만들고, 이재명 대통령이 곧바로 의결해 사법 리스크를 떨쳐버릴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이미 '피고인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법원은 임기 종료 시까지 재판을 정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법사위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이 후보가 재판받고 있는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를 무력화하는 법안도 발의했고, 14일엔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시켰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법으로 자신이 받고 있는 재판을 무력화할 경우 이 후보는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겠지만, 대한민국 법치는 무너진다. 눈앞의 분란과 다툼을 피하자고, 대한민국에 치명적인 화(禍)를 초래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지층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라가 나라가 아닌 꼴로 가고 있다. 참 기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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