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 꿈꾸는 시] 이유선 '낙과'

2018년 《모던포엠》 등단…시집 '그래도 일요일'
수성 문인협회 이사, 대구 시낭송 협회장 등

이유선 시인
이유선 시인 '낙과' 관련 이미지

〈낙과〉

해의 단맛이 감춘 씨앗, 자갈밭 내 몸에 떨어졌다

바람이 문질러 주는 공중을 얼마간 견디던 과육이

툭 내려놓은 열매

그늘이 기어다니는 자리에서는

외로움도 하나의 권력인 듯

깔린 돌 틈의 풀이 사뿐히 받아준다

덜 외로운 자, 더 외로운 자를 섬기는 공중

열매가 견딘 잠옷에서는 언제나

시금털털한 혁명 냄새가 났다

바람 부는 날 잎들은 비워졌고

안 보이던 강이 멀리서 흘러와

과육의 살갗은 더 이상 부풀어 오를 수 없을 만큼

탱글탱글하던 그때를 기억한다

땅에 떨어지면 곧 그곳이 무덤인 걸 안다

49일째 휴일이 없는 사람들의 입에 들면 그나마 다행

출렁거리던 각도의 품만큼

강물이 훤하게 내려다보이기 시작하면서

발목 잡던 어미를 원망도 한다

떨어져 단단한 돌 위에 찧은 이마

욕망의 틈새를 연다, 퇴로 차단하는 바닥에 항거하면서

조개처럼 혓바닥 내미는 초록의 혀

나날의 고통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유선 시인
이유선 시인

<시작 노트>

계절은 사망이 없다. 바람도 그렇고 하늘과 땅도 그렇다. 삶도 그럴 것이다. 씨앗이 다음 씨앗을 위해 죽음의 매듭을 넘어서는 것처럼 내가 죽어도 나의 얼은 천지간에 영생불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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