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태평양 서쪽 연안에 위치한 일본열도는 훗카이도(北海道), 혼슈(本州), 시코쿠(四國), 규슈(九州) 네 개의 큰 섬과 6천8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1.5 배에 달한다.
일본과 한반도와의 최단 거리는 200km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가 일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일본을 가리켜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말한다. 이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마음속으로는 멀게 느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왜 일본은 한국인에게 이처럼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되었을까.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우리 민족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특히 1910년 국권침탈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반일감정의 벽을 더욱 두텁게 하였다.
한일관계는 근세사에서 바라보면 넘을 수 없는 큰 장벽과 마주한다. 그러나 고대사로 올라가면 일본은 한국과 혈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형제의 나라이다.
2025년 한국은 일제 강점으로부터 광복된 지 80주년을 맞는다. 한 핏줄로 이어진 형제의 나라가 언제까지 과거사에 발목 잡혀 발톱을 세우고 으르렁대며 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제 감정의 벽을 허물고 형제의 우의를 회복하여 미래를 향해 힘차게 전진해야 한다. 그래서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거리도 가깝고 마음도 친근한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왜에서 일본으로 국명을 변경하게 된 배경, 그리고 이어서 일본이 혈연적 역사 문화적으로 한국과 어떻게 고리가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원래 국명은 왜국(倭國)
'일본서기'에는 일본과 왜국이란 표기가 동시에 등장한다. 왜(倭)는 일본의 고대 민족명 또는 국명이었다. 왜라는 한자의 표기가 7~8세기에 이르러서 화(和) 또는 일본으로 표기가 바뀐다.
왜라는 명칭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산해경' 해내북경이다. "개국은 거대한 연나라의 남쪽 왜의 북쪽에 있다. 왜는 연나라에 속한다.(蓋國 在鉅燕南倭北 倭屬燕)"
연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오늘날 중국 하북성 남쪽에 있던 나라이다. 그렇다면 '산해경'에 나오는 연나라에 소속된 왜는 대륙 동북쪽에 있던 지명으로서 오늘날의 일본열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서' 지리에 "낙랑의 바다 가운데 왜인이 있는데 나뉘어서 100여 개의 나라가 되었다.(樂浪海中有倭人 分爲百餘國)"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것이 아마도 오늘날 일본열도의 왜인에 대한 최초의 중국 기록이 될 것이다.
'후한서' 동이전에는 왜가 한국(韓國)의 동남쪽 큰 바다에 살고 있는데 그 나라가 100여 개 국이 된다고 하면서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이후로부터 사신이 한나라와 소통한 것이 30개 국가쯤 된다(自武帝滅朝鮮 使譯通于漢者 三十許國)"라고 말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이 존재할 당시에는 왜가 고조선 산하의 한 속국으로서 존재하다가 고조선이 멸망한 뒤로부터 중국 한나라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왜의 100여 개 국가 중에서 30개 국 정도만 한과 소통했다고 말한 것을 본다면 한무제 시기로부터 왜가 중국과 비로소 소규모적인 차원의 교류가 시작된 것을 보여준다.
'삼국지' 동이전에서는 부여전, 고구려전, 동옥저전, 읍루전, 예전, 한전 등과 함께 왜전이 독립적인 조항으로 추가되어 상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이는 왜의 위상이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크게 격상되어 중국과의 독자적인 교류가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을 반영한다.
남북조시대에 이르면 '송서', '남제서', '양서' 등에 모두 왜국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는데, 저들이 중국에 사신을 보내면서 "자칭 사지절 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모한, 육국 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自稱使持節 都督 倭 百濟 新羅 任那 秦韓 慕韓 六國 諸軍事 安東大將軍, 倭國王)"이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사지절(使持節)은 위진남북조 시기에 직접 황제를 대표해서 지방의 군권을 장악하고 행사하던 관직의 명칭이다. 도독(都督) 역시 중국 고대 군사 수장(首長)의 관직명인데 삼국시대에 도독 제도가 처음 생겼다.
그런데 저들 스스로 황제를 대표해서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모한, 육국의 여러 군사를 지도 감독하는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고 자칭한 것을 본다면 이때 왜국의 국력은 자신들이 고구려를 제외한 여러 동이 국가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고 자만심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다.
국력의 대폭적인 성장과 함께 왜국의 자부심은 수(隋)나라 시대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다. '수서'(隋書) 동이전 왜국조항에는 왜국이 수나라에 보낸 국서(國書) 가운데 "해가 뜨는 곳의 천자가 해가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日出處天子 致書日沒處天子)"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보낸 사사로운 문건이 아니고 중국 중앙정부 황제에게 보낸 공식 문서 즉 국서에 자신들을 "해뜨는 곳의 천자"라고 말했다는 것은 왜국이 수나라와 대등한 위치에 있는 천자의 나라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왜국(倭國)에서 일본으로 국명을 변경하게 된 배경
한, 위, 진, 남북조시대까지 중국 사서의 기록에 일본이란 국호는 나타지지 않는다. 줄곧 왜로 지칭되었다. 그러면 언제부터 왜가 일본으로 국호를 변경하게 되었는가.
일본 자체적으로는 자신들을 해 뜨는 나라의 천자국으로 인식하며 수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부터 대내외적으로 사용하는 국호를 왜에서 일본으로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본의 사서 가운데 언제부터 국호를 왜에서 일본으로 변경했는지 그에 관하여 명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중국의 '구당서'(舊唐書) 왜국 일본전에 "그 나라가 태양이 뜨는 곳에 있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일본이라 하였다.(以其國在日邊 故以日本爲名)" "왜국이 스스로 그 명칭이 우아하지 않은 것을 싫어하여 일본으로 개정했다(倭國自惡其名不雅 改爲日本)"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당서'(新唐書)에는 "함형 원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평정한 것을 축하했다. 뒤에 점차 중국의 발음을 익히면서 왜라는 이름을 싫어하여 일본으로 국호를 변경했다. 사신이 스스로 말하기를, '해 뜨는 곳과 가깝기 때문에 그래서 일본이라 하였다'라고 했다(咸亨元年 遣使賀平高麗 后稍習夏音 惡倭名 更號日本 使者自言 因近日所出 以爲名)"라는 기록이 보인다.
함형은 당고종의 연호로서 함형 원년은 서기 670년이다. 668년 고구려가 당나라에 의해 멸망했는데 일본은 670년 축하사절을 당나라에 보냈다. 거기에 국호를 일본으로 개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에 따르면 당나라 초기에 일본 국내에서 국호개정작업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삼국사기'에도 신라 문무왕 10년(670) 12월 초에 "왜국이 국호를 일본으로 변경했다. 해 뜨는 곳과 가깝기 때문에 일본이라 하였다고 스스로 말했다(倭國 更號日本 自言近日所出 以爲名)"라는 기록이 나온다.
'구당서', '신당서'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종합검토해 본다면 일본이 왜라는 이름을 버리고 일본이란 명칭을 국호로 사용하게 된 것은 대략 7세기 후반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란 국호가 중국에서 승인되어 외교상에서 정식으로 사용된 것은 당나라 측천무후가 집권하던 시기가 아닌가 여겨진다. 왜냐하면 당나라 장수절(張守節)이 쓴 '사기정의'(史記正義)에 "무후가 왜국을 개정하여 일본이라 했다(武后 改倭國 爲日本)"라는 기록이 있어 그것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본은 왜국으로 지칭되던 국명을 왜 굳이 중간에 일본으로 변경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신당서'에 말한 다음 기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뒤에 차츰 중국의 발음을 익히게 되자 왜라는 명칭을 싫어하여 일본으로 국호를 변경하게 되었다.(后稍習夏音 惡倭名 更號日本)"
즉 일본인들은 중국과 교류하면서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왜라는 한자의 발음이 왜소(矮小)하다는 왜(矮)자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왜 자는 갑골문에는 나타나지 않고 소전(小篆)에 비로소 보이는데 사람 인(人)자와 맡길 위(委)자를 결합한 회의(會意)자로서 왜(倭)에는 타인에게 순종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일본이 중국과 직접 교류를 통해 점차 중국의 언어와 문자를 이해하게 되자 일본을 지칭하는 한자 표기인 왜자는 발음상으로나 의미상으로 일본의 국호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따라서 일본의 국력과 위상의 격상을 계기로 이를 태양이 떠오르는 나라라는 좋은 의미를 담은 일본으로 국명을 변경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일본서기' 권 제1 신대(神代) 상에는 대일본(大日本)이라는 기록 아래 "일본을 이곳에서는 야마토라고 한다(日本 此云耶麻騰)"라는 주석이 보인다. 한자로는 일본으로 표기하는 데 일본말로는 야모토라고 한다는 것이다.
대화, 일본은 모두 일본어 야마토의 한자 표기인 셈인데 왜가 야마토에 대한 중국식의 한자 표기라면 대화와 일본은 야마토에 대한 일본인의 자체적인 한자 표기라고 하겠다.
중국인들은 북방의 훈누를 발음이 비슷하지만 나쁜 의미를 지닌 글자를 골라서 흉노(匈奴)라 표기했다. 일본을 왜(倭), 한국민족을 더러울 예(濊), 오랑캐 맥(貊)자를 써서 예맥이라 지칭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중화 중심주의가 반영된 동이족을 경멸하는 호칭인 것이다.
중국이 고대에 일본을 지칭할 때 사용하던 멸칭인 왜라는 표현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태양이 떠오르는 나라라는 뜻을 지닌 일본으로 국호의 한자 표기를 변경하여 사용한 일본의 자주정신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의 한자표기는 한강(韓江)이 아니라 한강(漢江)이다. 한강(漢江)은 한양조선시대 사대주의의 산물인데 아직도 그 명칭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번 광복절을 기해 한강(漢江)의 한자 표기를 한강(韓江)으로 바꾸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할 것을 제안한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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