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연미 디자이너의 세계 명품 이야기]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

반클리프 아펠의 스노우플레이크 펜던트
반클리프 아펠의 스노우플레이크 펜던트

김건희여사가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던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이 특검조사로 일반인들에도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김건희 특검으로 서민들에게도 알려진 반클리프 아펠은 '왕실의 보석'으로 불린다.

반클리프가 유럽 상류사회와 왕실 테두리에서 벗어나 많은 여성들의 로망으로 자리잡은 데는 '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의 힘이 컸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공주 '앤' 역을 맡은 헵번은 다이아몬드·진주·사파이어로 장식된 반클리프의 초커(목에 밀착한 짧은 목걸이)로 아름다운 목선을 뽐냈다. 반클리프 아펠이 뉴스에 오르내릴때마다 1993년 세상을 떠난 헵번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에스텔 아펠과 알프레드 반 클리프의 결혼식
에스텔 아펠과 알프레드 반 클리프의 결혼식

◆사랑에서 탄생한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

반클리프 아펠의 역사는 사랑에서 출발한다. 1896년, 네덜란드 보석 세공사의 아들 알프레드 반 클리프와 다이아몬드 상인의 딸 에스텔 아펠이 맺은 결혼은 단순한 인연을 넘어 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랑이 교차하는 새로운 하이 주얼리의 서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1906년,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결합해 '반클리프 아펠'이라는 이름의 메종을 세우고, 파리의 중심부이자 럭셔리의 심장으로 불리는 방돔 광장 22번지에 첫 번째 부티크를 열었다. 이곳은 유럽 귀족과 왕실, 그리고 문화 예술인들이 드나드는 사교의 무대이자, 럭셔리 하우스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상징적 장소였다.

이미 까르띠에(Cartier), 부쉐론(Boucheron) 등 거장들이 명성을 쌓고 있던 그곳에서, 반클리프 아펠은 후발주자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하며, 보석을 사랑과 예술의 언어로 승화시키며 후발주자로서의 불리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작이 특별했던 이유는 주얼리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 있었다. 반클리프 아펠에게 보석은 단순한 치장품이 아니라 사랑과 삶의 순간을 기록하는 예술적 매개체였다. 이 철학은 메종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고, 보석을 권력과 부의 과시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담는 상징으로 격상시켰다.

반클리프 아펠은 설립 초기부터 "사랑에서 탄생한 브랜드"라는 독보적 스토리텔링으로 파리 사교계와 유럽 왕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브랜드의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이 특별한 출발선 덕분에 반클리프 아펠은 오늘날까지도 단순한 보석을 넘어, 사랑이 예술이 되고, 예술은 혁신으로 이야기를 담아내는 하이 주얼리 메종으로 기억되고 있다.

미스터리 세팅의 스케치와 실물 디자인
미스터리 세팅의 스케치와 실물 디자인

◆ 혁신과 도전, 미스테리 세팅의 신화

1933년, 반클리프 아펠은 세계 최초로 미스테리 세팅(Mystery Set) 기법의 특허를 취득했다. 이 기법은 1937년 파리 국제 전시회에서 공개되며 큰 호평을 받아 브랜드의 정체성과 장인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 혁신으로 자리 잡았다.

미스테리 세팅은 금속 발톱(프롱:prong)이나 베젤(bezel) 없이 보석이 매끄럽게 이어진 듯 보이는 새로운 세팅법으로 보석 뒷면에 미세한 홈(groove)을 파고 금속 레일에 끼워 넣어 금속이 완전히 감춰지며, 보석만이 떠 있는 듯한 효과를 낸다.

보석 하나를 세팅하기 위해 100분의 1mm 단위의 정밀함이 필요하며, 제작 시간은 완성된 한 작품(브로치, 클립, 반지 등) 기준으로는 최소 300시간 이상 소요된다. 복잡한 하이 주얼리 한 점을 완성하는 데 1,000시간 이상 소요된다. 주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와 같은 경도가 높은 보석에 적용돼, 희소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지닌다.

오늘날까지도 미스테리 세팅은 반클리프 아펠을 대표하는 기술이자, 주얼리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까다로운 세팅 방식으로 평가된다.

브레이슬릿으로 변형 가능한 지프 네크리스
브레이슬릿으로 변형 가능한 지프 네크리스

◆지퍼가 만든 하이 주얼리

반클리프 아펠의 지프 네크리스는 주얼리 역사에서 가장 대담한 발명 중 하나이다. 1930년대 시작된 지프 네크리스는 금속의 유연성과 보석 세팅의 정밀함을 동시에 구현해야 했기에 수년의 연구가 필요했다.

금속이 매끄럽게 열리고 닫히면서도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같은 보석이 안정적으로 세팅되도록 만드는 일은 상상을 뛰어넘는 난제였고 수년간의 연구 끝에, 1950년대 초 파리 아틀리에에서 마침내 첫 지프 네크리스가 탄생했다.

이 목걸이는 지퍼처럼 여닫을 수 있으며, 목걸이와 팔찌로 변형이 가능하며 하이 주얼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은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반클리프 아펠의 대담하고 창의적인 정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빈티지 알함브라 브레이슬릿
빈티지 알함브라 브레이슬릿

◆ 행운의 상징, 알함브라의 탄생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의 네잎클로버 모양 아치에서 영감을 받은 알함브라 컬렉션은 행운, 건강, 부, 그리고 사랑을 상징하는 네 개의 꽃잎을 모티브로 한다. 창립자의 조카인 자크 아펠은 "행운을 믿는다면, 행운은 찾아온다"는 말을 즐겨하며 네잎 클로버와 같은 상징을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1968년, 반클리프 아펠이 처음 선보인 알함브라 롱 네크리스(사투아르)는 메종의 정신을 가장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이었다. 크링클 처리된 옐로우 골드 위에 20개의 클로버 모티프가 정교하게 이어졌고, 각 모티프는 섬세한 골드 비즈 테두리로 장식되어 은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테일을 자아냈다.

빈티지 알함브라 브레이슬릿
빈티지 알함브라 브레이슬릿

당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모나코의 그레이스 켈리 왕비와 프랑스 가수 프랑수아즈 아르디가 알함브라 롱 네크리스를 즐겨 착용하면서, 그 인기는 단숨에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이 컬렉션은 행운을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녀 출시와 동시에 주얼리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반세기를 넘어선 오늘날까지도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으며, 반클리프 아펠을 대표하는 영원한 시그니처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기요셰 옐로 골드와 블루 아게이트 소재의 양면 링은 컬렉션의 상징적인 스타일 코드를 반영한 알함브라 모티브 주얼리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기요셰 옐로 골드와 블루 아게이트 소재의 양면 링은 컬렉션의 상징적인 스타일 코드를 반영한 알함브라 모티브 주얼리

◆브랜드의 영원한 영감, 예술과 자연

반클리프 아펠의 주얼리는 자연과 시, 발레, 동화에서 영감을 얻어왔다. 꽃과 나비, 새의 생동감을 정교한 세공으로 담아내며, 단순한 장식을 넘어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1940년대에 선보인 발레리나 클립은 무용수의 우아한 동작을 다이아몬드와 보석으로 표현해 메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 등장한 페어리 클립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에서 출발해 요정의 섬세한 날개와 신비로운 표정을 주얼리에 담아냈다. 1980년대의 스노우플레이크 컬렉션은 눈송이의 결정체를 모티브로, 다이아몬드의 차가운 광채와 건축적 라인을 강조했다. 이는 시대적 트렌드와 메종 특유의 섬세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반클리프 아펠은 자연과 동화적 상상력을 통해 아름다움을 넘어 꿈과 희망을 전한다. 주얼리가 곧 예술이 되고, 예술이 곧 삶을 위로하는 순간을 만드는 것이 메종의 진정한 가치다.

반 클리프 앤 아펠스가 이란 파라 디바 황후를 위해 제작한 왕관
반 클리프 앤 아펠스가 이란 파라 디바 황후를 위해 제작한 왕관

◆할리우드와 왕실의 사랑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 이후 반클리프 아펠은 록펠러센터에 첫 미국 사무소를 열었다. 1942년 맨해튼에 부티크를 개설해 파리에서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확장했다.

파리에서 인정받던 예술적 장인정신은 뉴욕에서 새로운 문화와 결합하며 한층 더 세련된 매력을 드러내며 고객층은 유럽 왕족에서 미국의 할리우드 스타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모나코의 그레이스 켈리, 이란의 파라 팔라비 황후,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소피아 로렌 등 반클리프 아펠의 작품을 사랑한 대표적 인물로 이들의 선택은 곧 브랜드의 품격을 보증하는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니콜 키드먼, 줄리아 로버츠, 케이트 블란쳇, 힐러리 스웽크, 미셸 양자경, 앤 해서웨이, 샤를리즈 테론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 시상식, 칸 영화제 등 주요 행사에 반클리프 아펠을 착용했다.

오늘날까지도 반클리프 아펠은 파리와 뉴욕을 잇는 예술적 유산을 계승하며, 아름다움과 이야기, 그리고 역사를 함께 전하는 하이 주얼리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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