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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10분 안에 사랑에 빠져야한다…가성비 끝판왕 '로테이션 소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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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만에 10명 이상과 만나는 '로테이션 소개팅' 호황
여러 이성 만나며 10분 대화 반복하며 '정신없지만 묘한 활력' 경험
MZ세대 결혼 의지는 있지만 자연스러운 만남 기회는 줄어

로테이션 소개팅 관련 생성형 AI 사진. ChatGPT
로테이션 소개팅 관련 생성형 AI 사진. ChatGPT

연애 상대를 찾는 데도 요즘은 '가성비'가 통한다. 2시간 만에 10명 이상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소개팅이 있다. 이름하여 '로테이션 소개팅'이다. 짧고 굵게, MZ식 사랑의 오디션이 열린다.

최근 몇 년 사이 로테이션 소개팅이 젊은 층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SNS를 통해 손쉽게 참가 신청이 가능하고, 참가자의 조건을 까다롭게 심사해 신뢰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만남과는 차별화된다. 형식도 다양하다. 5분, 10분, 30분 이내 짧게 여러 명과 연달아 만나는 '스피드 데이팅'형부터 식사나 와인, 게임 등을 곁들여 비교적 여유 있게 이어가는 '파티형 로테이션'까지 있다.

특히 시간과 만남의 기회가 적은 2030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효율성이 매력으로 작용해 전국적으로 전문 주최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로테이션 소개팅에 참가했던 30대 직장인 여성 A씨의 후기를 들어봤다.

로테이션 소개팅 관련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로테이션 소개팅 관련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가성비 끝판왕…하지만 10분은 짧았다

토요일 오후 8시, A씨는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대구의 한 카페로 향했다. 이곳에는 A씨를 비롯한 14명의 여성들이 호기심과 긴장 속에 각각 배정된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카페 1층은 여성 참가자들의 대기 공간이었다.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앉아 있는 여성들 앞에, 곧 남성들이 2층 대기실에서 내려왔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남성들이 차례차례 착석하면서 '로테이션 소개팅'은 시작됐다.

참가자들이 이 자리에 앉기까지는 제법 긴 과정이 필요했다. 사전에 이름과 나이, 키, 몸무게, 이상형, MBTI 같은 기본적인 정보부터 재직증명서나 명함을 첨부하고, 사진까지 올려야 했다. 어느 정도 신뢰성을 보증한 뒤 초대를 받은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이날 참가자는 남녀 각각 14명, 총 28명이었다. 테이블에 마주 앉은 뒤, 서로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교환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종이 울리면 10분간의 대화가 끝난다. 다시 종이 울리면 다음 차례의 상대가 다가온다. 직업군은 회사원부터 공무원,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다양했지만, 대화 주제는 대부분 가볍게 취미나 일상으로 흘러갔다. 참가자들은 준비된 소개서에 적힌 몇 줄의 정보에서 질문을 뽑아내며 어색함을 풀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진지하게 상대를 파악하려는 눈빛이 오갔다.

로테이션 소개팅 관련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로테이션 소개팅 관련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14명의 이성을 연달아 마주하는 경험은 '정신없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각자 새로운 상대와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마다 분위기는 새로워졌지만, 동시에 에너지를 빠르게 소모했다. 140분의 대화가 끝나자 10분 남짓의 선택의 시간이 주어졌고, 군중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A씨는 "힘든 만큼 생소한 경험이었다. 낯선 사람과의 단 10분의 대화를 반복하는 방식은 낯설면서도 묘한 활력을 줬다.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라며 "결국 아무도 선택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다시 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로테이션 소개팅'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다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은 '효율'을 중시하는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닿아 있다.

SBS Plus, ENA
SBS Plus, ENA '나는 솔로'의 한 장면. SBS Plus, ENA

◆현실 연애는 안해도 예능은 인기

이러한 로테이션 소개팅의 활성화 배경에는 '나는 SOLO'와 같은 매칭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신청의 허들을 낮췄다는 데 있다. 인기 프로그램들을 기점으로 무수히 나오고 있는 연애 매칭 프로그램이 익숙한 MZ세대는 마치 출연자가 된 것처럼 낯선 여러 상대를 알아가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다.

예전에는 연예인들이 주로 나와 짝을 맺거나, 연예인과 일반인을 매칭하는 프로그램들이 주류였다면 최근 5년새 일반인을 앞세운 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를 얻으며 출연진이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세를 얻는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하트시그널, 나는 SOLO와 같은 유명 프로그램들은 계속해서 다음 시즌을 내놓고 있으며, 헤어진 전 연인과 함께 출연해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거나 다시 X(전 연인)와 이어지는 '환승연애'도 MZ세대 사이에서 높은 화제성을 얻으며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이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포스터. 넷플릭스
넷플릭스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의 한 장면. 넷플릭스

계속해서 양산되는 연애 프로그램이 피로해질 때쯤이면 새로운 콘셉트의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올해 MZ세대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제성을 얻은 프로그램을 꼽자면 단연 넷플릭스의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다. 공개 사흘만에 '오징어게임3'을 제치고 국내 넷플릭스 TOP10 1위에 올랐다. 연애가 서툰 청춘들이 인생 첫 연애라는 관문을 넘는 과정을 진정성 있게 담은 신선한 데이팅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다. 여느 프로그램들처럼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각 출연진들의 개인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춰 누구에게나 있을 서툰 시절을 떠올리게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예측 불가하지만 순수한 출연진들의 행동은 명대사로 남기도 했다.

JTBC
JTBC '연애남매'의 한 장면. JTBC

가족이 함께 출연하는 '가족 참견형' 연애 프로그램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지난해 남매들이 모여 함께 살면서 서로의 인연을 찾아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연애남매'에 이어 올해는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자녀들의 연애를 들여다보는 '내 새끼의 연애'도 방영 중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기자가 가장 공감하며 본 연애프로그램은 유튜브 채널 십오야의 '사옥미팅'이다. 국내 대표 예능PD 나영석 PD가 이끄는 '에그이즈커밍'과 김태호 PD가 이끄는 TEO의 PD 6명이 모여 프로그램 제목처럼 회사 대 회사 미팅에 나선다. 일에 치여 연애할 엄두 안나는 여섯 직장인이 처음에는 콘텐츠 제작의 일부로 촬영을 시작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몰입하게 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리 설렘'을 느끼게 한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서 각각 1화 357만회, 2화 190만회라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채널 십오야의
유튜브 채널 십오야의 '사옥미팅' 중 한 장면. 유튜브 채널 십오야
유튜브 채널 십오야의
유튜브 채널 십오야의 '사옥미팅' 중 한 장면. 유튜브 채널 십오야

◆취업만큼 연애하기 힘든 MZ

2030세대들이 연애를 위해 이토록 노력하는 이유는 뭘까. 실제로 결혼정보회사(결정사)들은 역대급 호황을 맞이했다. 한 국내 대형 결정사 매출은 2020년 281억 원에서 2024년 454억 원으로 4년만에 1.5배 이상 성장했다. 이는 단순한 기업 실적을 넘어 연애·결혼 시장의 지형 변화를 반영한다.

세상과 단절됐던 지난 코로나19 이후 만남의 방식은 급격히 달라졌다. 영화관, 술집, 노래방, 모텔 등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장소들의 이용률은 2019년 대비 15~40% 가까이 줄어들며 오프라인 접점은 급속히 쇠퇴했다.

반면, 비대면 접속이 가능한 온라인 데이팅 앱은 대폭 상승세를 보였지만, 여기서 만난 관계는 결혼을 염두에 둔 진지한 연애라기보다는 가벼운 만남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꺼리는 분위기도 만연하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발전 가능성이 낮고, 결국 관계 자체가 쉽게 단절된다는 게 이유다.

결혼 관련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결혼 관련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3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초혼 연령은 남자 33.9세, 여자 31.6세로 늦어지고 있다. 하지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청년의 73%는 여전히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보이고 있다. 결혼 의지는 남아 있으나 현실적으로 시간은 촉박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가 줄어든 상황에서, 청년들이 러닝크루나 등산 모임 같은 오프라인 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만남의 풍경과 통계적 지표는, 로테이션 소개팅과 같은 새로운 오프라인 형식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도 결국 만남에서 시작된다. 한정된 시간 속에 스쳐간 수많은 얼굴, 그중 단 하나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성비'를 넘어선 사랑 아닐까.

소개팅 관련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소개팅 관련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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