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의료과실로 인한 사망이나 장애 사고를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해온 보험사들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수술 중 의료진의 과실이나 오진으로 인한 피해는 '예상 가능한 부작용'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발생한 우연한 사고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6일 '주요 분쟁사례로 알아보는 소비자 유의사항(의료과실 사고 및 고지의무 관련)'을 통해 의료과실과 고지의무 위반과 관련된 최신 분쟁 사례를 소개하며 소비자들에게 주의사항을 안내했다.
◆의료과실도 보험금 지급 사유
금감원에 따르면, 비뇨기계 질환으로 1차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A씨는 수술 후 의식 저하로 대학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수술을 시행한 병원은 부적절한 수술로 인한 의료과실임을 인정하고 유족과 합의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예상 가능한 수술 부작용"이라며 상해사고로 볼 수 없다고 주장, 유족의 상해사망보험금 청구를 거절했다.
금감원은 이 같은 보험사 조치를 잘못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피보험자가 수술에 동의했더라도 의료과실로 인한 상해까지 동의했다고 볼 수 없으며, 의료과실은 외부 요인에 의한 우연한 돌발적 사고로 '약관상 상해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질병치료 중 의료과실로 상해를 입은 경우, 이는 질병에 따른 내재적 원인이 아닌 외래적 요인에 의한 우연한 사고로 보는 것으로 판단한 바 있다.
금감원은 의료진의 '적극적 실수'뿐 아니라, 진단 오류나 치료 지연 등 소극적 부작위로 발생한 의료사고도 상해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허리 통증을 호소한 환자 B씨가 대학병원에서 단순 통원치료만 받다가 병이 악화돼 하지마비를 겪은 사례가 있었다. 병원은 적절한 검사를 하지 않아 병을 오진한 과실을 인정했지만, 보험사는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신체에 위해를 가한 것이 아니므로 외래성이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의사가 적절한 진료를 제공하지 않아 생명·신체가 침해된 경우, 그 부작위는 신체를 침해하는 외부의 작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상해보험금 지급을 인정했고, 이는 지난해 8월 대법원에서도 확정됐다. 금감원은 "의료과실이 명백한 경우 보험사가 약관을 이유로 지급을 거절하더라도 소비자는 관련 판례를 근거로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지 방해 시 계약 해지 불가
보험 가입 시 설계사가 청약서의 고지사항(질병력·직업 등)에 대해 질문하지 않거나 사실 고지를 방해한 경우,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점도 금감원은 분명히 했다.
금감원은 TM(전화모집)보험 가입자 C씨의 사례를 들었다. C씨는 설계사가 과거 입원 여부를 묻지 않았는데도, 보험사는 '입원력 미고지'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 또 다른 가입자 D씨는 설계사로부터 "허리치료 이력은 고지 대상이 아니다"라는 안내를 받아 답하지 않았는데, 이후 보험사는 이를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고 계약을 취소했다.
두 사례 모두 금감원 조사 결과 설계사의 고지방해 행위가 인정돼 보험계약 복원 조치가 이뤄졌다. 금감원은 "보험설계사가 고지할 기회를 주지 않았거나 고지를 방해했다면, 보험회사는 이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고지의무 위반이 실제 사고와 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보험금 지급이 가능하다는 점도 확인됐다. 예를 들어 어깨질환 수술 필요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E씨가 교통사고로 어깨를 다친 경우나, 알코올의존증 입원이력을 고지하지 않은 F씨가 사고로 사망한 경우 등이 해당한다. 두 경우 모두 금감원은 "고지의무 위반 사실이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인정했다.
금감원은 상법 제655조를 근거로 "보험사는 고지의무 위반이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쳤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소비자는 고지의무 위반 통보를 받더라도 사고와 무관하다면 지급 요구를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집이 보험금 분쟁에서 소비자 권리를 강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디지털·비대면 보험 가입이 늘어난 만큼, 소비자 스스로 고지 내용과 설계사 안내 녹취를 꼼꼼히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은 "보험계약자는 보험사에 대한 의무를 다하되, 정당한 권리 역시 스스로 지킬 필요가 있다"며 "의료사고와 고지의무 분쟁은 결국 정보의 비대칭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 많은 뉴스
몸싸움·욕설로 아수라장된 5·18묘지…장동혁 상의까지 붙들렸다
李대통령, '내란특검' 수사기한 연장 승인
광주 간 장동혁, 5·18 묘역 참배 불발…시민단체 반발에 겨우 묵념만
법무부 내부서도 "대장동 항소 필요" 의견…장·차관이 '반대'
한강서 '군복 차림' 행진한 중국인 단체…"제식훈련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