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에는 게임에서 진 참가자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주최 측 일꾼, 그리고 일꾼으로 위장해 총격을 일삼는 'VIP'들이 등장한다. VIP들은 게임 패배자들을 사냥하기 위해 골목길을 휘젓고 다니며 총을 쏜다. 게임에서 지면 어차피 죽을 패배자들이니 죽이는 데 서슴없다. 반인륜적 가책은커녕 쾌감을 느낀다.
1992~95년 보스니아 전쟁의 '사라예보 포위전' 동안 오징어게임에 버금가는 '인간 사냥'이 있었다는 주장과 정황이 이탈리아에서 나왔다. 일명 '저격수 사파리(sniper safaris)'가 있었다는 것이다.
◆보스니아판 '오징어게임'
이탈리아 밀라노 검찰은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인은 물론 미국, 러시아 등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이 사라예보 시내에 갇힌 시민들을 저격해 죽인 의혹과 관련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일명 '저격수 사파리'에 참가한 이들은 우리 돈 1억 원이 넘는 거액을 참가비를 지불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인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 등에 따르면 밀라노 검찰청의 조사는 언론인이자 작가인 에지오 가바체니가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가바체니는 "무기를 좋아하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사기 위해 돈을 냈다"고 했다. 그는 라 레푸블리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적어도 100명 정도가 그 행위에 가담했다"며 "현재 가치로 최대 10만 유로(약 1천700만 원 남짓)의 참가비를 냈다"고 주장했다. 인간 사냥에는 '가격표'도 달렸다. 어린이, 군복 입은 무장 군인, 여성 순으로 돈을 많이 걸었으며 노인은 무료로 죽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인간 사냥꾼'으로 불린 외국인들이 보스니아 전쟁 중 사라예보에 있었다는 의혹은 수차례 제기됐던 터다.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탈리아 ANSA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군사정보기관 시스미(Sismi·군사정보보안국)도 이런 의혹을 사실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미는 저격수 사파리 참가자들이 이탈리아 북부 트리에스테에서 항공편으로 출발해 사라예보 시내를 내려다보는 언덕 지역으로 이동한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영화 '사라예보 사파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시쳇말로 가둬놓고 공격하기 용이했다.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1천425일에 걸쳐 이 지역을 포위했다. 현대사에서 가장 긴 포위전으로 기록됐다. 이 기간 동안 1만1천 명이 넘는 민간인이 살해됐다.
이탈리아 언론은 약 30년 전에도 이 사건을 다룬 바 있다. 당시에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다. 이번에 고발장을 검찰에 제출한 가바체니는 영화 한 편을 본 뒤 이 주제에 재차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2022년 슬로베니아 출신 영화감독 미란 주파니치가 내놓은 다큐멘터리 영화 '사라예보 사파리'였다. 영화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외부인들이 사라예보 포위전에 보였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민간인에게 총구를 들이댄 증거는 이전에도 있었다. 1992년에는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 작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에두아르드 리모노프(2020년 사망)의 기관총 난사 장면이었다. 그는 당시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의 안내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라지치는 2008년 체포된 뒤 헤이그 국제재판소에서 집단학살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반론도 있다. BBC는 1990년대 사라예보에 주둔했던 영국군 관계자들로부터 '괴담'에 가깝다는 증언을 전했다. 민간인에게 총을 쏘려고 외국인을 들여오는 시도는 수많은 검문소 때문에 물리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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