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관계가 또다시 경색 국면에 접어들었다. 과거 영토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던 것과 양상이 다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이 몰고 온 파장이다.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중국 내정에 대한 심각한 간섭으로 풀이한다. 일본 여행 자제 등 교류를 제한하는 일명 '한일령(限日領)'을 내리는 데도 거침없다. 일본과 이어온 경제 협력도 단칼에 자르겠다는 강경 일변도의 자세다.
견원지간처럼 보이는 양국 관계의 갈등사는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치욕을 감내해야 하는 역사였다. 특히 일본과 전쟁에서 승리한 지 80년이 되는 올해다. 중국이 치욕의 역사를 되새기는 와중에 나온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발언에 감정적 골까지 깊어지는 모양새다.
◆힘의 균형 무너지면 전쟁으로 비화
중국 역사서에 일본이 처음 등장한 건 위지(魏志) 왜인전이다. 239년 왜의 다섯 왕이 위나라에 와서 조공을 했다는 내용이 실렸는데 일본 역사 교과서도 이를 긍정한다. 중국을 대국으로 인식했다.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러 주기적으로 찾았다. 수나라 때는 견수사, 당나라 때는 견당사가 왔다. 일본 나라시대인 630년부터 894년까지 견당사는 20년에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주변국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갈등을 일으킬 만한 존재로 인식된 건 '왜구(倭寇)'로 소개될 때다. 해적질과 노략질로 송나라 조정을 애먹였을 때다. 송나라의 빈약한 군사력은 무협지에도 정설로 통한다. 섬나라의 특성상 식량이 부족하면 대륙을 침략해 약탈을 일삼던 터였다. 무엇보다 일본은 자신들의 정치적 딜레마를 중국을 통해 풀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이다. 1592년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군은 끝내 중국 영토를 밟진 못했다. 그러나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한 선조의 읍소로 조선에 파병 온 이여송의 명나라 군과 전투를 치른다. 조선 원병에 나섰다 쇠약해진 명나라는 1644년 여진족의 후금(청나라)에 멸망한다.
이후 300년간 조용했던 두 나라가 충돌한 것은 1894년 조선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이었다. 일본의 압도적 군사력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중국인들에게 공포로 남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청일전쟁, 중일전쟁까지 연패했던 중국이다. 특히 1937년 일본은 당시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에서 30만 명이 넘는 중국인을 참살했고, 이때의 기억이 일본을 대하는 시선으로 뚜렷이 남아있다.
◆역사인식 차이, 상존하는 부비트랩
냉전 해체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양국 관계는 과거사 망언,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발목이 잡혔다. 1994년 태평양전쟁을 식민지 해방전쟁이라 주장하고 난징대학살을 부인한 나가노 시게토 법무상의 날조 발언, 2005년 일본 정부의 왜곡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 그리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추진 등에 중국인들은 격분했다.
과거사 날조와 부인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중국은 난징대학살을 '난징대도살'이라 부른다. 동물을 잡아 죽이듯 중국인들을 마구잡이로 살상했다는 의미로 공분의 정도가 매우 높다. 지금도 학살당한 이들의 시신을 발굴하며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되새긴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중국의 애국전선이 확대되는 때다. 중국은 올해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이자 대만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로 기념한다. 올해 7월에는 난징대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 '난징사진관'이 8천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던 터다. 다카이치 일본 총리 역시 난징대학살을 반성하기는커녕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면서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던 전력이 있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에게 과거사는 지난 일이 아니다. 살아있는 역사다.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사를 정당화하려는 발언을 하는 건 모욕이자 도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일본을 언제든 제압할 수 있는 상대로 본다. 지금은 힘의 균형이 무너졌는데 균형을 맞춰 건재를 과시하려는 일본이 미국을 고리로 삼으며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일본을 미국의 전초 기지로 인식한다. 대만 유사시 일본이 나선다는 말도 중국 입장에서는 위협으로 들린다. 중국과 미국이 첨예하게 맞서는데 일본이 선두에 나서 중국을 타격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대만을 향한 일본의 시선도 참기 어렵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주권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았다고 강조한다.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1971년) 모두가 그 증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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