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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그날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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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국의 음모
하스미 시게이코 지음 / 문학과 지성사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1848년 12월 10일 선거에서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루이 나폴레옹이 프랑스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루이는 제국 재건의 야망을 품고 있었으나 우유부단한 태도로 일관했다. 오랜 망명과 외국생활로 인해 국내 정치 기반이 전무한 탓이었다. 그에겐 의붓동생 드 모르니가 있었는데, 기병장교로 군인들과 친분을 맺었고 설탕공장을 경영해 자산을 쌓았으며 귀족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부르주아의 계산속도 빈틈없이 익혀 정치적 사교적으로 자리를 잡은 터라 동생에게라도 도움을 받아야할 입장이었다. 세간에 쿠데타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제2공화국 헌법은 4년 단임제라서 루이 나폴레옹이 권좌에 머물 방법은 비합법적 정권탈취, 즉 친위쿠데타 밖에 없었다. 그리고 1851년 12월 2일 아침. 파리 시민은 벽에 붙은 인쇄물을 본다. 제2제정의 시작이다.

전 도쿄대학 총장을 지낸 하스미 시게히코. 불문학자이자 오즈 야스지로와 존 포드에 관한 연구로 최고의 명성을 쌓은 최고의 영화평론가이다. 하스미는 프랑스 제2제정을 연 친위쿠데타와 10년 뒤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가 상연되는 두 개의 사건을 놓고 풀어가는 짧은 이야기 『제국의 음모』를 펴낸다. 1991년 처음 쓰여져 2018년 출간된 책이 2025년 4월 한국 독자와 만나게 되었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책은 루이 나폴레옹과 드 모르니, 두 배다른 형제의 가족사와 재회 이전까지의 활동으로 시작해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상연이 가지는 음모와 반복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끝난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이야기, 특히 공화정과 제정이 교차하는 숨가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를 세밀히 살피려는 하스미의 노력과 내공은 탁월하다. 그러니까 플로베르 전문가인 하스미라서 근대 프랑스 역사에서 루이 나폴레옹의 친위쿠데타 주역인 드 모르니의 행적에 관해, 또한 10년 뒤 입법원장이 되어 가명으로 쓴 오페레타의 상연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그의 계략과 원대한 그림에 대해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풀어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친위쿠데타와 관련해 드 모르니가 서명한 포고를 설명하면서 "250만 이상의 유권자에게서 부당하게 참정권을 뺏을 목적으로 제정된 전해의 선거법이 폐지되고 1848년 6월 노동자와 사회주의자의 봉기를 압살한 반동의 소굴이라 해야 할 '국민의회'의 해산을 언급하고 있으니, 이 요청은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던 파리의 민중에게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여겨질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하스미는 이 포고를 "정치주역은 프랑스 국민이라는 어휘를 구사하면서, 독재적인 제정(帝政)으로의 이행이라는 자신의 최종적 셈속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 포고는 10년 뒤 유대계 독일인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로 다시 한 번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스미의 통찰은 1851년 12월 2일의 포고문과 1861년 5월 31일 오페레타의 극본을 쓴 동일한 남자에게서 재연이 아닌 반복을 보았다는 점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그런데 정작 흥미로운 점은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2018년에 단행본으로 나온 책을 왜, 하필, 2025년 4월에(당초 출간 예정일은 3년 전쯤이었다고 번역자는 밝힌다.) 출간했을까. 그러니까 책에서 맞닥뜨리는 놀랍도록 일치하는 그날의 분위기. 1851년 12월 2일과 2024년 12월 3일. 전자가 19세기 과학 기술에 힘입은 포고령의 다량 인쇄가 성공을 견인했다면, 후자 역시 정보통신 기술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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