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말이면 어김없이 중학생들의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온다. 중학교의 시험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곧 고등학교 진학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학생들은 소위 '내신'이라 불리는 점수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물론 진학 성적은 시험 점수뿐 아니라 생활 태도 등 여러 요소가 함께 반영되지만, 시험의 비중이 높다 보니 학생들에게는 시험이 곧 전부처럼 느껴진다.
특히 3학년 진급을 앞둔 2학년 학생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이번 시험만 끝나면 중학교의 최고 학년이 된다는 사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이제 더 이상 놀면 안 된다는 현실, 공부하지 않으면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편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아이들의 표정에는 긴장이 서린다. 그 변화는 수업 시간의 사소한 행동에서도 금세 드러난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한 아이들
평소 질문을 잘 하지 않던 학생들이 갑자기 손을 든다. 수업 중 질문을 받는 일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 내용이 반갑지 않을 때가 있다. 가장 흔한 질문은 "이거 시험에 나와요?"다. "왜 그게 궁금하니?"라고 물으면 "시험에 안 나오면 안 해도 되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두 번째로 자주 듣는 말은 "이렇게 적으면 몇 점이에요?"이다. 교실을 돌며 개별 지도를 하다 보면 자신이 쓴 답안을 들고 점수를 가늠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칭찬을 해줘도 "그럼 만점이에요?"라며 다시 확인을 받고 싶어 한다. 쉬는 시간에도 교사 곁을 떠나지 않고 세세한 부분까지 묻는 학생들은 대체로 불안감이 높거나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닌 경우가 많다.
중학교에서 20년 가까이 수업을 하다 보면, 배움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이런 질문들이 때로는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처음 글자를 배워 길거리 간판을 더듬더듬 읽던 시절의 설렘을 떠올려 보면, 배움은 본디 가장 순수한 기쁨이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 그 기쁨은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변한다. 공부의 목표가 '이해'나 '탐구'가 아니라 '점수'로 바뀌는 순간, 학습의 깊이는 얕아지고 태도는 수동적으로 변한다. 학원에서는 학교별 기출문제를 제공하고, 학생들은 그것을 외워 시험을 준비한다. 평소 공부를 미루다 시험이 다가오면 서랍 속에서 학습지를 찾아 헤매거나 교사에게 다시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소위 '벼락치기'로 점수를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가 된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교실의 공기는 한층 무거워진다. 진도는 잠시 멈추고 "자습을 시켜 달라"는 요청이 이어진다. 하지만 막상 자습이 시작되면 집중해서 공부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잠시 후면 엎드려 자거나 친구와 장난을 치거나, 학원 숙제를 꺼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습을 요청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시험 잘 보고 싶지? 그런데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을까 봐 불안하지? 그 불안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험이 기다려질 정도로 깊이 공부해 보는 거야. 모든 과목을 잘하려 하지 말고, 한 과목이라도 도전해 보고 싶은 걸 정해서 교과서를 필사해 봐. 교과서를 옮겨 적고 나서 문제집을 풀어 봐. 국어는 이해 과목이라 하지만, 아는 게 있어야 이해가 돼. 기초를 쌓고 나서 문제를 풀어 봐. 국어는 암기 과목이기도 해."
아이들의 학습 태도와 변화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건넨 조언이라 그런지, 많은 학생들이 공감한다. 그중 몇몇은 실제로 조언을 실천해 성적이 올랐다며 기쁘게 자랑하기도 했다. 시험이 학습의 외적 동기로 작용하는 경우라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시험은 삶을 위한 배움의 기회
교실에는 여전히 시험과 상관없이 학습 의욕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학생과 상담을 해보면, 그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초등 시절 과도한 선행학습으로 이미 학습 흥미를 잃은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기초학력이 부족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에는 맞춤형 학습 지원을 제공하지만, 누적된 학력 결손은 단기간의 보충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무엇보다 가정의 세심하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시험은 단순히 점수를 매기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이다. 시험을 통해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 경험이 성장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삶을 위한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일이 교사의 역할이라면, 그 길 위에서 부모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시험은 아이에게 실력을 증명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를 알아가게 하는 기회다. 그러나 많은 부모가 그 의미를 잊고 점수로 아이의 노력을 재단하곤 한다. 성적표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공부했는가, 무엇을 배우며 성장했는가이다. 부모가 결과보다 과정을 바라봐 줄 때, 아이는 시험을 두려움이 아닌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시험이 끝난 뒤 "이번엔 몇 점이야?"보다 "공부하면서 어떤 점이 어려웠어?"라고 물어봐 주는 한마디가, 아이의 배움에 대한 믿음을 지켜주는 가장 큰 응원이다.
시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시험 결과는 잠시 머물다 지나가지만, 배움을 통해 얻은 성취감과 통찰은 오래 남는다. 시험이 아이들에게 불안의 기억이 아닌 성장의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연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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