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賦)'의 의미는 '구실'이다. 그리고 '구실'은 국어사전에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 혹은 '예전에 온갖 세납(稅納)을 통틀어 이르던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한자 '부'(賦)에는 '조세'(租稅)라는 의미가 '구실'과 관련하여 살아 있지만, 우리말 '구실'에는 '의무' 정도의 의미만 남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납세는 의무'라는 정의(定義)가 성립된다.
'구실'의 어원을 소급하다 보면 흥미롭게도 고대의 조세 제도에 닿게 된다. 중국 주나라에서 제창한 정전법(井田法)은 국가에서 일정 넓이의 토지를 '정'(井) 자 모양으로 9등분하여 외곽 8개 구역을 가구별로 나눠주고, 중앙의 한 구역은 8가구가 공동 경작하여 그 수확물만 국가에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하였으니, 세율로는 9분의 1이며, 전체 생산량의 11%에 해당한다. 정전법은 유교적 이상향에서 낮은 세율로 민생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이웃끼리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 중심의 도덕적 경제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시스템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행되지 못하고 이상으로 남았고, 세율 '9분의 1', 즉 '구일'이 '구실'의 어원이 되었다. 그러므로 '구실'은 이상적 세율이자 백성의 의무인 셈이다.
또 과거 조세에서 유래한 '반타작(半打作)'이라는 말도 있다. '반타작'은 지주가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수확량의 절반으로 매기는 것으로, 겉으로는 공평해 보인다. 그러나 종자나 농기구 구매 비용 등을 농민에게 전가하였기에, 농민의 손에는 수확물의 20~30%도 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였으니, 이럭저럭 반은 남긴다는 통념은 허구에 불과한 기만적 세법(稅法)이었다.
역사적으로 조세가 사람의 구실을 넘어 생존의 위협이 되었을 때 공동체는 붕괴했다. 갓 태어난 젖먹이를 군적(軍籍)에 올려 세금을 뜯어내던 황구첨정(黃口簽丁)이나 이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금 대장에 올려놓고 세금을 징수하던 백골징포(白骨徵布)는 조선 후기의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오죽하면 정약용은 살인적 세금 때문에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백성의 절규를 목도하고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를 써서 당시의 가혹한 수탈을 고발하였겠는가?
고대의 정전법이 9분의 1 세율을 통해 도덕적 생산 공동체를 꿈꾸었던 반면, 조선 후기의 가혹한 수탈이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조세가 계량적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시사한다.
조세는 국가 공동체의 핵심 동력이다. 그러나 자산 격차의 심화와 저성장 국면 속에서 조세를 둘러싼 갈등은 갈수록 첨예하게 되고, 조세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복잡해지고 있다. 세금이 공동체를 위한 분담이 되느냐, 아니면 삶의 기반을 흔드는 부담이 되느냐의 기로에서 중요한 것은 조세의 적정성과 공정성이라는 원론적인 가치이다.
국민이 마땅히 해야 할 '사람 구실'로서의 납세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조세가 삶을 옥죄는 사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금은 부의 재분배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구성원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역사가 증명하듯, 세금이 공동체의 신뢰를 잃고 수탈의 도구로 전락할 때 사회는 뿌리째 흔들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숫자나 비율에 매몰된 논쟁이 아니다. 조세가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살리는 '선한 구실'이 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국가는 국민에게 구실을 하라고 강요만 할 일이 아니라, 세금이 구실을 하도록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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