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언론사가 운영하는 유튜브가 실적 내는 건 어렵지 않다. 과격한 우파 논객을 불러 이른바 '지지자 가두리 양식'을 하면 된다. 그들이 원하는 소리만 내주면 시청자는 열광한다.
그러다 매일신문은 지난해 5월 '금요비대위'란 코너를 작게 만들었다. 금요일에만 하는 작은 코너였다. 다만 패널 구성을 기존 우파 언론사와 다르게 가져갔다. 야생으로 갔다. 모든 당 패널을 적극 섭외했다. 계엄 뒤 여야를 넘어 지지자 양측이 극한의 대립까지 가기 시작해서였다. "그래도 얘기는 들어 보자"는 시도였다.
더불어민주당 패널 섭외는 힘들었다. 이재명 대통령 측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른바 '수박' 계열만 그나마 호응했다. 이 대통령 측 주요 인사는 매일신문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대선 때 이 대통령 아들 관련 보도와 짐 로저스 보도가 꽤나 큰 상흔을 남겨서였을까. "험지도 이런 험지는 없다"는 논리도 따라 붙었다.
민주당에 몇 번을 읍소했다. 김주영 민주당 공보국 부국장은 이런 나를 긍휼히 여겼는지 "용기있는 사람"이라며 전화번호 하나를 넘겼다. 김지호 대변인(50) 번호였다.
김지호가 누구던가.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이던 시절 비서관이었던 이 대통령의 복심이었다.
과연 그가 올까 싶었다. 결국 왔다.
지난해 11월14일 김 대변인의 데뷔전이었다. 댓글이 난리였다. "저 정도는 해야 개딸들한테 인정받는구나... 김지호도 참 힘들겠어" "김지호 제정신이야? 저게 민주당 대변인이구나. 대단하네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음" "살다 살다 김지호를 여기서 보다니... 얼마나 뻔뻔할지 기대됩니다" "김지호는 어쩜 관상이 딱 민주당상이야" "뻔뻔함이 상상을 너무 뛰어 넘어버리니 계속 보기가 힘드네요" "김지호는 제발 섭외 제외 시켜 주세요" 등 부정적인 댓글만 가득했다.
100일이 지났다. 최근 댓글은 이렇다. "김지호 진짜 싫었는데 한동훈 비판하는 거 보고 호감도 상승함. 성남시장 나오면 고민해 봄" "김지호 보니까 얼굴이 부자상이다" "가끔 밉살스럽지만 김지호 화이팅" "김지호 말이 일리있다. 나는 아직까진 보수다" "김지호 후보 님, 결과가 만족스러우시길! 응원합니다" "김지호 씨는 공직에 가려면 막말하지 말고 정직한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네요."
금요비대위에 출연하는 나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도 이따금 '좌파'로 불린다. 극우로 낙인 찍힌 매일신문 유튜브에서 이 정도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동안 금요비대위는 주5일 방송이 됐고 김 대변인은 요즘 TV조선 쪽 섭외 전화도 자주 받는다고 한다.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우파 언론사에 인터뷰 기사 내 달라는 철면피
그런 그가 며칠 전 "인터뷰 기사 좀 내 달라"고 전화를 해왔다. 이젠 민주당에 할당된 유튜브 패널 자리를 넘어 매일신문에 자기 기사가 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매일신문은 대구·경북 출신이 아니면 민주당 출신 인터뷰가 흔치 않다. 그런 우리에게 인터뷰 요청이라니. 난 "그냥 저냥 나오는 인터뷰는 하기 싫은데... 제 스타일로 한 번 하실래요?"라고 물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내 첫 질문은 이랬다. "어쩌다 극우 매일신문 유튜브에 출연하게 됐나. 결정이 어렵진 않았나."
그는 편견이든 만류든 '일단 겪어보는 사람'이었다. 김 대변인은 "우리 진영에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비호감이니까 우려는 좀 했다. 만류하는 민주당 사람도 많았다. 민주당 공보국에서 처음에 여자 패널 분에게 부탁했는데 '매일신문은 절대 싫어요'라고 했다더라. 또 다른 분은 '나가고 싶어도 주변에서 너무 뭐라고 해서 나갈 수가 없네요'라고 했다"며 "근데 일단 다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출연했다. 생각 보다 사람들 모두 매너가 좋았다. 솔직히 다른 방송 나가면 우파 언론사는 놀리는 용도로 민주당 패널을 소모하는데 금요비대위는 좀 달랐다"고 말했다.
인터뷰 기사를 내고 싶었던 건 그가 성남시장으로 출마를 선언해서다. 경쟁자는 김병욱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다. 체급 차이가 너무 난다. 김 전 비서관은 성남에서 국회의원만 2번 한 잔뼈 굵은 정치인이다.
더 문제는 김 전 의원이 김 대변인의 '보스'였다는 점이다. 김 대변인은 대학 졸업 뒤 증권정보업체에서 10년 정도 일을 하다가 김 전 의원이 처음 국회의원이 됐던 2016년 의원실 비서관이 되며 정계에 발을 들여놨다. 10년 뒤 자기가 모시던 보스를 상대로 출사표를 낸 셈이다.
"물밑에서 조정을 좀 했는데 내가 안 했다. 부담이 없냐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붙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난 한동훈이 아니다. 일단 출마해서 싸워보고 내 정치를 하는 게 정치가 아닐까 싶다."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0년대 중반 판교에 아파트를 분양 받으면서부터다. 낮엔 회사원이었던 그는 저녁엔 입주예정자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아 지역 일을 시작했다. 성남시에 집단 민원 넣고 공공시설을 유치하며 지방행정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재미난 건 그가 이 대통령이 2008년 분당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낙선운동을 벌이며 이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는 점이다. 당시 성남은 판교 인근을 '분구(分區)'하는 문제로 시끄러웠다. 이 대통령은 당시 판교 인근을 '분당북구'로 한다고 공약을 했고 '판교구'를 밀던 김 대변인은 낙선운동을 했다.
둘이 가까워진 건 2009년이었다. 이 대통령이 김 대변인을 찾았다. "나 내년에 성남시장 출마할 건데 도와 달라."
김 대변인은 지역 요구사항 40개를 적어서 이 대통령에게 퉁명스레 내밀었다. 이 대통령은 김 대변인의 지역 요구사항을 자신의 공약으로 올렸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고 자신이 요구했던 지역 요구사항 대부분이 지켜졌다고 한다.
회사원에서 자영업자로 삶에 변화를 준 뒤 계속 '미생'의 인생을 살던 그는 2016년 정식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그 전까지는 여가 시간에 정치권 외곽에서 지역 일을 돕는 게 그의 소일거리였지만 김병욱 전 의원이 분당을 국회의원 선거를 나오게 되며 정식으로 캠프 멤버가 된 것이었다. 김 전 의원이 당선된 뒤 그는 '국회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꽃길 버리고 진흙길 택한 무식함
김 대변인이 잘 다니던 국회의원실을 그만둔 건 2018년 초의 일이었다. 민주당 내에서 심한 탁류가 흘러서였다. 한 해 전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당시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경선은 한국 정치 역사상 가장 치열한 대장정이었다. '혜경궁 김씨'에 '문준용 사태' 등 양측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아직까지 이어지는 당시 불화는 그에게도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다가왔다. 이 대통령이 대선 경선 패배 뒤 2018년 경기지사에 출사표를 내서였다.
2017년 문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이 대통령은 당내에서 거의 '왕따' 수준이었다고 한다. 김병욱 의원실 소속 일개 비서관이었던 김 대변인 입장에선 자기 보스에게 "저 이재명 캠프로 파견 좀 보내 주십시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파견을 가면 이 대통령이 낙선해도 돌아올 곳이 있지만 파견을 보내달란 말은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김 대변인의 선택은 '사표'였다. 그는 비서관직을 내려놓고 이재명 경기지사 캠프로 합류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살얼음판이었다. 경선 상대는 '친문' 전해철 전 의원이었다. 더구나 당시는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을 컷오프 시키자"는 보복론이 대세였던 때였다. 그때 당 대표였던 추미애 의원과 김영진 전 의원, 이해찬 전 총리가 버텨줘서 다행히 경선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 대변인이 인생에서 꼽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이때였다. 하지만 경선에서 이 대통령이 이기며 '꽃길'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경기지사가 된 이 대통령은 차기 대선후보로 우뚝 선다. 그런데 김 대변인은 또 피곤한 인생을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가 되고 당을 장악한 직후 그는 이 대통령에게 "저는 분가하겠다. 성남에서 내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대통령실을 따라가지 않았다. 경기지사 시절 비서진 대부분이 한 자리 씩 꿰찰 때 그는 야인으로 남았다. "도대체 왜 대통령실을 따라가지 않았나. 가면 좋은 자리 많지 않나"란 질문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비서관은 지도자를 안 보이는 곳에서 조력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영향을 주고 싶어도 보스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난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재명에 업혀서 사는 거 싫다. 솔직히 세대 차이라는 것도 있고 조직이 크면 답답한 게 많지 않나. 이 대통령은 늘 너무 혁명적이었다. 난 솔직히 좀 보수적인 사람이다. 이 대통령 밑에서 권한과 기회를 받으며 많이 배웠다. 난 이제 내 정치를 하고 싶다."
왜 굳이 성남시장일까. 성남은 경기도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다. 보수화가 이뤄진 곳이다. 경기도엔 민주당 텃밭도 많은데 왜 성남일까. 그가 말했다.
"내 고향이니까 성남시장이 되고 싶다. 민주당에게 쉽지 않은 곳인 것 잘 안다. 그런데 성남 보수층은 좀 이익집단화 됐다. 정치 성향으로 선거를 하기 보다는 공약을 보고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세다. 게다가 지금 성남시장 나온다는 사람들 다 '고인물' 아닌가. 나이가 일흔인데 또 나오려는 사람이나 의원을 하던 사람 모두 말이다. 난 젊은 성남을 만들고 싶다."
그가 역점으로 두고 있는 건 교통과 재개발·재건축이다. 서울에서 더 많은 사람이 성남으로 올 수 있게 교통 환경을 개선하고 구성남이라고 불리는 곳을 서울의 마포처럼 만들겠다고 한다.
"만약 당선되면 잘 할 수 있겠어요?"란 질문을 넌지시 던졌다.
"내가 이 대통령한테 배운 게 하나 있다. 경기도는 북한 접경 지역이라 통일부에서 낙하산이 온다. 서기관 자리를 하나 꿰차는데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시절 이 자리를 경기도청 공무원에게 줬다. 통일부에서 욕을 엄청 했다. 그런데 그걸 버텨내 공직자가 신명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든 거다. 그들에게 목표가 생기니까. 예전에는 승진하려고 조직장에게 돈 가져다 주는 문화에 아부만 떠는 사람도 많았다. 이 대통령이 있을 때 그게 사라졌다. 조직을 관찰하고 좋은 떡잎에 기회를 준 뒤 냉정하게 평가해 일 잘하는 사람을 우대하고 일 못하는 사람을 멀리 하면 조직 전체가 다 열심히 하게 된다. 성남을 그렇게 만들고 싶다."
법인카드와 초밥, 형수 욕설 등이 뇌에 가득한 난 이 대통령과 있었던 이야기를 더 깊게 묻기 시작했다. 그는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중간 중간 솔직한 얘기를 많이 털어놨다. 그러면서 "계속 이거는 기사에 절대 쓰면 안 돼요"라고 했다.
근데 막상 인터뷰를 끝내고 기사를 쓰려고 보니 뭐가 오프 더 레코드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서 그냥 다 썼다.
기사가 나간 뒤 "최 기자! 오프 더 레코드 내용을 쓰면 어떡해"라는 항의 전화가 올지 모르겠다. 그럼 "우파 언론사랑 인터뷰 하면서 오프 더 레코드가 지켜질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답해야 하나 싶다.
근데 아마 그는 항의 전화를 안 할 것이다. 그게 김지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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