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고기와 내장육을 연결하는 고기가 있다. 바로 '막곱창'이다. 막곱창을 중심으로 상당한 파생육이 연결된다. 소의 위에서 나오는 양·벌집·천엽, 소의 동맥으로 불리는 '오드레기'와 소의 속껍질층인 '소구레' 등이 별미군을 형성한다. 대구와 부산이 주도적으로 전국화시킨 막곱창은 일본으로 넘어가 '호루몬야키'를 파생시킨다. 물론 막곱창이 순대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대구 주당급 토박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구이에 엄지척. 부산 자갈치시장 곰장어골목 옆에 '양곱창골목'이 있다. 언뜻 대구 안지랑시장 양념곱창골목과 오버랩되는데 막창과 곱창, 거기에 소양 부산물을 코스식으로 먹을 수 있게 했다. 여러 주인이 한꺼번에 스탠드바식으로 운영하는 '백화양곱창'이 아직 관광객한테는 가장 핫하다. 하지만 골목 내 모든 업소가 저마다 찐 단골을 확보해놓았다. 현재로선 안지랑골목과 함께 한국 막곱창구이의 양대 산맥이랄 수 있다. 대구 양곱창은 봉희가든·부산양곱창·소백산양대창, 후발주자인 양곱화 등이 유명하다.
◆안지랑곱창골목
남구 대명동 안지랑네거리. '안지랑시장 안지랑양념곱창골목'. 이 거리는 두 존으로 갈라진다. 12m 폭의 도로가 213m 뻗어있는 윗동네, 8m 폭의 도로가 270m 뻗은 아랫동네로 나눠진다. 안지랑오거리에서 남쪽 룸비니유치원 근처까지 60여 업소가 밀집해 있다. 여기는 '양념곱창 특구'라 할 수 있다. 별명은 '한 바가지 곱창골목'.
대구도시철도 1호선 안지랑역 3번 출구 앞에 있는 안지랑시장. 1970년대 앞산 안지랑 계곡을 복개하면서 생긴다. 원조는 1979년 '충북집'으로 출발한 충북막창. 김순옥 할매는 1966년 대구로 시집을 왔다. 원래 곱창보다 아나고 대가리 구이집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재료 구하기가 어려워 포기했다. 복어 불고기처럼 곱창에 마늘·고춧가루 등 갖은 양념을 넣어 연탄불에 구워냈는데 이게 어필된 것. 초창기에는 연탄불을 사용했는데 민원, 위생문제 등 때문에 지금은 가스로 대체됐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 젊은세대를 겨냥한 알록달록한 '치즈곱창시대'가 열린다.
◆막곱창 1세대
대구 내장구이 역사는 도축장 중심으로 확산된다. 1969년 4월 18일, 현재 성당못 옆 두류수영장 자리에서 도축 전문법인 '신흥산업'이 오픈한다. 1970년 시립도축장으로 발돋움하면서 막곱창 구이 시대가 열린다. 도축장은 1981년 중리동 현재 퀸스로드 자리에 있다가 2004년 북구 검단동 유통단지 내로 이전한다.
대구막창 1번지는 남구 대명동 영남이공대 정문 맞은편에 있는 황금막창. 김연순 할매는 1970년대 초 옛 미도극장 근처에서 남산초등학교로 넘어가는 일명 '합승도로'변에서 막창요리를 선보인다. 처음엔 곱창전골 비슷한 '막창국'을 끓여냈다. 주당의 반응은 별로였다. 술안주로 1% 부족. 다른 요리법을 찾는다. 끓인 게 맛이 없다면 그럼 구워보자. 곧바로 연탄불 위에 석쇠를 얹고 막창을 올려놓았다. 대박이 나자 향촌동 뭉티기와 함께 1순위 안주로 단번에 등극한다. 이후 도축장 주변을 막창거리로 탈바꿈시킨다. 1980년대 초 영남이공대 근처로 이전한다.
대구 막곱창계에 지존급 두 할매가 있다. 막창은 황금막창의 김씨 할매, 곱창은 충북식당의 김순옥 할매가 리더. 이후 원조 황금막창은 물러나고 숱한 동명 막창 가게를 파생시킨다.
그 기운은 달서구 두류동 7호광장 근처의 '서울막창', 뒤를 이어 1986년쯤 상동성당 근처에서 '상동소막창'이 들어선다. 1987년 범어시장 내에서 생겨난 '동봉막창'. 삶지 않은 소막창 시대를 연다. 지금은 범어점과 팔공산점이 있다.
막창 대중화의 선두주자는 달구지막창과 연동된 <주>달구지 푸드. 1993년 달서구 백조아파트 근처 '대동막창'을 모태로 2002년 전국 150개 가맹점을 확보하는 등 비약적 발전을 했다. 훈제 막창은 물론 진공포장용 막창도 유통했다.
동구 반야월에서 태어난 '대구반야월막창'은 지역 막창 체인 중 가장 파워풀하게 성장했다. 반야월은 먹기 좋은 '초벌막창시대'를 열었다. 그 뒤를 소시지 등을 곁들인 '우야지막창'이 맹렬한 기세로 추격했다. 황금네거리 근처에서 태어난 '부자막창'은 수정불판 시대를 연다.
이밖에 대구호텔 근처 '삼일막창', 황금네거리 근처 '제일막창', 두산동 '아리조나막창', 성서 '부원막창', 청구네거리 '대구막창', 북구 산격동 '딱조아막창', 두산동 '마루' 등이 자기 세를 유지하고 있다. KBS2 '인간극장'에 소개된 세쌍둥이(선영·경은·정원) 자매가 차린 '장미와 곱창'도 화제.
크리스탈호텔 바로 옆 '신흥막창'도 90년대까지만 해도 핫플이었다. 직접 중리동 도축장에 가서 막창을 가져왔다. 문을 연 건 1987년. 당시 내장 판매권을 상이군경회와 일반인들이 반씩 나눠가졌다. 신흥이 생기자 뒤이어 포장마차를 하던 똘이가 가세하고 삼미, 진해, 대원 등 6개 업소가 생겨났다.
◆새로운 문파들
안지랑곱창과 쌍벽을 이루는 곱창골목은 서구 '중리동 곱창골목'. 중리동은 평리동과 상리동(일명 가르뱅이) 중간에 있어 생긴 지명이다. 1981년 중리동 도축장이 생기자 인근 중리못을 중심으로 33개의 포장마차가 일시에 곱창촌으로 변한다. 반고개, 구번식당, 정원, 뽀식이, 천상 등이 초창기를 주름잡는다. 무허가 시설이라서 구청 단속자들과 숱한 갈등을 빚었다. 결국 중리못을 매립해 식당가를 신축한다. 1984년 1월 30여개 업소가 '합법적으로' 영업을 개시. 지난 대구국제마라톤대회 거리응원전 때 '곱동이'란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후 수성못권, 서부정류장권, 경대북문권에 이어 2010년을 넘어서면 대구시 전역이 막곱창권으로 확산된다. 부산 돼지국밥 전수조사가 힘들 듯 대구 막곱창 가게도 그 육곽을 다 파악하기 힘들다.
현재 막곱창 마니아 사이에서 가장 핫한 반응을 보이는 건 크게 걸리버막창, 찬앤찬, 구공탄, 효목골, 막창도둑, 올해는 '연잎숙성막창시대'를 연 '연막창'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곱창전골 이야기
곱창전골로 유명한 두 식당이 있다. '버들식당'과 '선산곱창'.
달서구 성당1동 이월드 남쪽 끄트머리 바로 옆 골목 안에 있는 지역 곱창전골의 리더인 '버들식당'. 선산 출신인 박옥자가 1967년 현재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한다. 당시 성당못은 둘레가 수성못 반 정도 되었다. 그래도 둘레가 1㎞ 남짓. 못주변에 20여 그루의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식당업은 상호도 불분명하고 영업신고 개념도 없었다. 앞산 안지랑 닭도리탕촌처럼 다들 무허가였다. 제대로 된 건물도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버들집은 영업한 지 얼마 안 돼 신축된다. 식당에서 살림까지 할 요량으로 규모있게 지었다. 못 주변에는 봄날 알르레기의 주범으로 악명이 높았던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 나무를 보고 '버들집'이라 영업신고한다. 지금 주차장에 있던 버드나무는 꽃가루 때문에 베어져 버렸다.
예전에는 불고기용 놋쇠 불판을 사용했는데 이젠 돌판을 쓴다. 15년 전부터는 젊은 커플이 많이 찾는다. 무조건 곱창만 고집할 수가 없었다. 달라진 세상의 흐름을 메뉴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돌판도 2인, 3인, 4인, 5인, 7인분용 짜리를 구비해 놓았다. 20년 전부터 메뉴 구성에 변화를 줬다. '환상의 맛전골' 시리즈를 냈다. 곱창·대창·불고기를 통영의 우짜(우동과 짜장면의 합작품)처럼 하나로 합쳤다. 2대 사장이 된 유희옥이 그렇게 결정했다. 단골들이 수시로 '각기 떨어져 있는 별도 음식을 한꺼번에 먹고 싶다'며 섞어 달라 했다. 지역에서 처음으로 '삼합전골'을 개발하게 된 것. 밥을 다 먹고나면 꼭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먹게 한다. 이 '곱창볶음밥'이 이 집의 별미로 정착했다.
예전 성당못 도축장으로 가던 동서방향 도로는 두류공원로에 의해 두 동강으로 끊겨 버렸다. 전성기 때는 버들, 송강, 해성, 아담 등 20여 업소가 밀집해 있었다. 가업은 이제 3대 사장인 손자 채병두한테로 이어졌다.
선상곱창에도 오밀조밀한 탄생비화가 묻어 있다. 1967년쯤, 선산읍 동부리 축협 앞에 훗날 '곱창할매'로 불리는 강선희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대한식당'. 그런데 단골 때문에 '대한곱창'으로 상호가 바뀐다. 90년대 후반 새로운 라이벌이 나타난다. 김태주 선산곱창이다. 이후 이동근, 이인영, 신상철, 정하용, 최영덕 등 숱한 전골 전사가 자기 이름 옆에 선산곱창을 붙였다. 2005~2010년 라이벌의 곱창춘추전국시대가 열린다. 곱창할매는 71세로 고단한 삶을 마감한다. 아들(이성구)은 간판에 모친의 얼굴을 붙였다. 세 딸도 모두 가업을 잇는다. 대구에 수성점을 내면서 가맹사업을 시작한다. 선산곱창에는 묵은지가 첨부되는 게 특징이다.
※막창이란
막창은 많은 오해를 부른다. 소의 위(胃)와 장(腸) 명칭을 혼동한 탓. 소의 위는 모두 4개가 연결돼 있다. 1번 위가 가장 큰데 일명 곰양·혹위 등으로 불린다. 용적은 90여ℓ. 코끼리 정수리 부위처럼 생긴 부분은 '양깃머리'(일명 특양)로 불린다. '양곱창' '소양'이란 명칭도 사실 1번 위 때문에 생긴다. 2번 위는 벌집 모양의 벌집·거물위. 일명 '절창'으로도 불린다. 3번 위는 '천엽(千葉)'으로 지역 뭉티기 전문점 인기 반찬. 마지막 위는 붉은빛이 감돌아 홍창 혹은 막창으로 불린다. '창'자가 오해를 초래했다. 막창과 대창이 헷갈린다. 막창은 창자가 아니고 소의 마지막 위. 대창은 소장(일명 곱창) 다음으로 연결되는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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