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방부 브리핑에서 유독 자주 들려 화제가 된 표현이 하나 있다.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의 "제한됩니다"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탈영 의혹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답변이 제한됩니다" "설명드리기가 제한됩니다"는 식의 답변이 반복됐다. 군사기밀이나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처럼 실제 공개가 제한되는 정보도 적지 않지만, 안규백 장관의 병적기록상 탈영·영창 여부 같은 특정 항목을 확인해주면 될 사안에서도 "제한된다"는 표현이 이어지면서 책임 회피성 소통이라는 인상도 함께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난 9일 국빈 방문으로 프랑스 파리에 가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입에서도 공교롭게 같은 표현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동포간담회에서 취임 초 해외 방문 일정을 많이 잡은 이유를 설명하며 "저의 임기는 헌법상 명확하게 제한돼 있기 때문에, 빨리 정상외교를 시작해야 그 효과를 오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직접 연임 문제를 거론해 답한 건 아니었지만, 최근 정치권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개헌' 및 '연임' 이슈와 맞물려 읽힐 수 있는 발언이었다.
정부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대통령과 한 부처의 대변인. 지위도, 사안도 전혀 다르지만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문장 구조에서 묘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답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답변이 제한된다".
"연임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임기가 제한돼 있다".
바로 화자 자신의 판단보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 조건을 먼저 설명하는 화법이다.
◆"제한돼 있다"와 "하지 않겠다"는 같은 말일까
해당 발언에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 시민사회 간담회에서 "연임을 안 한다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어떠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자 "도둑질은 안 하겠다고 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그런 말을 굳이 해야 하나"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직접적인 '연임 포기 선언'을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현행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개헌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다고 규정한다. 현행 헌법만 놓고 보면 이재명 대통령의 연임은 사실상 차단돼 있다.
그렇다면 역으로 이런 질문이 생긴다. 법적으로 그렇게 명확하다면 "저는 연임하지 않습니다"라는 한 문장은 왜 굳이 구사하지 않는 걸까.
◆야권 프레임 거부? 지지층의 '혹시나'?…화법의 4가지 이유
헌법이 자신을 '제한한다'고 설명하는 것과 자신이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다른 종류의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런 화법에서는 크게 4가지 정치적 이유를 읽어볼 수 있다.
▷첫번째는 '야권이 만든 질문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상 불가능한데도 "연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요구하는 순간, 마치 연임이 실제 선택지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도둑질' 비유도 이런 인식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도 못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상대가 만든 정치적 전제를 인정하게 된다는 논리다. 얼핏 봐도 말의 주도권이 내가 아닌 상대에게 옮겨간다.
▷두번째는 '이재명 연임'과 '연임제 개헌'을 분리할 필요성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바꾸자는 데 찬성해왔다. 제도로서의 연임제에는 찬성하지만 자신이 그 수혜자가 되는 문제는 별개라는 것이다. 자신의 불출마 여부를 반복해 언급하면 권력구조 개편 논의 자체가 '이재명 한 번 더 하기' 논란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여기서 갖가지 오해와 억측이 나와 국정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세번째는 지지층이 품은 기대를 대통령이 굳이 직접 꺾을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친명(친이재명) 성향 지지층 일각에서는 "5년은 너무 짧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연임을 바라는 목소리가 분명 존재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들을 의식해 일부러 연임 가능성을 풍긴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다만 정치적으로 따지면 차이가 발견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저는 다시 출마하지 않습니다"라고 직접 선언하면, 현행 헌법상 사실상 차단돼 있는 연임 문제를 재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지층이 품고 있는 기대를 대통령 스스로 꺾는 정치적 부담을 자초할 수 있다.
반면 "현행 헌법상 임기가 제한돼 있다" 정도로만 말하면, 연임 가능성을 인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자신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는 지지층의 기대를 보존하는 효과가 생긴다.
▷네번째는 '포스트 이재명'의 시계를 굳이 앞당길 필요가 없다는 권력 관리 측면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제는 5년 단임제인 만큼 임기 종료 시점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 직접 "다음 대통령 선거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반복 선언하면 정치권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러면 다음은 누구인가"로 이동한다.
여권 차기 주자들이 서두르며 후계 경쟁이 빨라질 수 있다. 임기가 한참 남은 대통령에게 굳이 '포스트 이재명' 경쟁의 출발 신호를 먼저 울릴 정치적 유인은 크지 않다는 해석이다. 쉽게 말해 레임덕을 뭐하러 굳이 앞당기겠냐는 얘기다.
◆같은 '제한' 다른 무게…끝내 하지 않은 한마디
결국 관심은 '이재명 대통령이 현행 헌법 아래 연임할 수 있느냐'에서 한 발 옆으로 이동한다. 현행 헌법만 놓고 보면 답은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이다.
질문의 포커스는 오히려 여기에 맞춰진다. 왜 이재명 대통령은 그러한 명확한 결론을 자신의 의지로 옮기는 순간,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제한돼 있다"는 표현을 택하는가.
앞서 살펴본 여러 정치적 이유를 종합하면 답은 비교적 단순하다. 자신의 의지를 직접 선언해 스스로 선택지를 좁히는 것보다, 현행 헌법이라는 외부 조건을 설명하는 편이 정치적으로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야권이 만든 프레임에 끌려들어갈 필요도 없다. 지지층의 기대를 직접 꺾을 필요도 없으다. '포스트 이재명'의 시계를 앞당길 이유도 없다.
국방부 대변인의 "답변이 제한됩니다"와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가 제한돼 있습니다"는 같은 뜻도, 같은 무게의 말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선택을 직접 말하는 대신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먼저 설명하는 문장의 구조는 닮았다.
결국 '제한된다'는 표현은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정치에서는 무엇을 말했는지만큼, 무엇을 굳이 자신의 말로 확정하지 않았는지도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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