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이 최근 한 달간 국내 증시에서 26조원 넘는 주식을 팔아치운 가운데, 일부 금융주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조선주에는 매수세를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를 대거 처분한 반면 실적 개선 기대감이 남아 있는 종목에는 선택적으로 투자하는 모습이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최근 1달(9월 18일~10월 19일) 동안 국내 증시에서 약 26조4082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14.11%, 1.62% 하락했다. 글로벌 AI 투자에 대한 우려와 금리 부담 등이 맞물리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증시 하방 압력을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 매도세는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됐다. 외국인은 해당 기간 SK하이닉스를 15조9775억원, 삼성전자를 6조5169억원어치 순매도했다. 두 종목의 순매도액만 22조4944억원으로 전체 순매도 규모의 약 85.2%에 달한다. 삼성전자우도 8898억원어치 팔아치웠다. 이밖에 ▲두산에너빌리티(-6579억원) ▲SK스퀘어(-5069억원) ▲KB금융(-4073억원) ▲현대차(-3999억원) 등이 순매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우리금융지주였다. 같은 기간 4827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전체 종목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이어 ▲심텍(2006억원) ▲HD현대중공업(1375억원) ▲파마리서치(1346억원) ▲SFA반도체(1337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금융주 내에서도 종목별 차별화가 뚜렷했다. 외국인이 우리금융지주를 대거 사들인 것과 달리 KB금융은 4000억원 넘게 순매도했다. 은행업종 전반에 대한 일괄적인 매수보다는 개별 종목의 밸류에이션과 주주환원 기대 등을 고려한 선별적 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해석된다.
은행주는 증시 급락 국면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은행업종의 최근 한 달 수익률은 -11.6%로 코스피(-14.5%)를 웃돌았다. 은행업종의 올해 예상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65배 수준으로 낮은 밸류에이션도 투자 매력으로 거론된다.
반도체 업종에서도 외국인의 매매 방향이 엇갈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집중적으로 매도하면서도 심텍과 SFA반도체, 하나마이크론(852억원) 등 반도체 소부장 종목은 사들였다. 이 기간 심텍은 1.17% 하락하는 데 그쳤고, SFA반도체와 하나마이크론은 각각 5.09%, 4.92% 상승했다. 코스피가 14% 넘게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대형주의 주가 변동성이 확대된 가운데, 설비투자 확대와 후공정 수요 증가에 따른 수혜가 기대되는 소부장 업체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분산된 결과로 풀이된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메모리 업체들의 주가 회복이 더딘 가운데 소부장을 통해 알파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며 "이미 시세를 많이 냈던 전공정보다 후공정 및 소재, 소모품을 선호하는 성향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선업종에서는 HD현대중공업에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됐다. HD현대중공업은 최근 한 달간 주가가 26.41% 하락했음에도 외국인 순매수 상위 3위에 올랐다. 초대형 LPG운반선(VLGC) 수주와 중장기 가스선 발주 확대 기대감 등이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LNG선 가격 하락과 중국 조선업체와의 경쟁 심화 등 업황 불확실성은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 배경에는 글로벌 AI 투자에 대한 신용위험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데이터센터 기업들의 차입 부담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AI 관련 자산의 비중을 줄이고,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대만 증시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AI 투자의 신용위험 증가에 글로벌 주식 시장에서 AI 비중이 낮은 국가로 자금 이동이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수급이 반전을 보이기엔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최근 들어 외국인의 매도 강도가 일부 완화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 16일 코스피 시장에서 8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끝낸 데 이어 19일에도 매수 우위를 나타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19일 외국인은 코스피 현물에서 약 6000억원을 순매수했다. 그러나 누적 순매도 규모가 워낙 큰 만큼 단기 매수 전환만으로 추세적 복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다.
향후 외국인 수급의 방향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과 AI 설비투자 지속 여부에 달렸다는 전망이 나온다. AI 투자 기업들의 자금조달 부담이 완화되고 반도체 업황에 대한 신뢰가 회복돼야 외국인 매수세도 본격적으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는 실적의 개선보다 할인율과 매도 압력이 가격을 지배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며 "추가 비중 확대는 외국인 현물 매수의 지속성에 연동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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