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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백인계 적십자 봉사원 "나누면 얻는 게 더 많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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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계 적십자 봉사원이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려운 이웃에 전달할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백인계 적십자 봉사원이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려운 이웃에 전달할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비워야 채워지고, 나누면 얻는 게 더 많아져요. 그게 제가 봉사하는 이유죠."

직장인이 출근하듯 자원봉사에 매일 자신의 시간을 쏟는 이가 있다. 2006년 대한적십자봉사회에 입회해 20년 동안 봉사를 해온 백인계(75) 봉사원이다. 이달 8일 기준 그의 누적 봉사시간은 3만3천286시간. 2000년 이후 입회한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소속 봉사자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이다. 지난 20년간 매주 평균 32시간(직장인 법적 근로시간 상한은 1주 40시간)을 이웃을 위해 썼다는 의미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2020년과 2024년 대통령 표창을 두 차례나 받았다.

그는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황금2동 봉사회 소속이다. 대한적십자봉사회 대구 수성구지구협의회장과 대구시협의회장에 이어 전국협의회 부회장을 지냈고 지난해 일반 봉사원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여전히 봉사로 꽉 차 있다.

지난 12일 오후 대구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백인계 봉사원은 황금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도시락 조리와 배달을 마친 뒤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온 참이었다. 그는 오후 내내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동료 봉사원들과 함께 어려운 이웃 100가구에 전달할 저녁 도시락을 만들었다.

백인계 적십자 봉사원이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려운 이웃에 전달할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백인계 적십자 봉사원이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려운 이웃에 전달할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어린 시절 어머니 덕분에 봉사 눈 떠

그가 봉사에 마음을 쏟게 된 건 어머니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살던 집이 시장통 한 가운데에 있었어요. 오가는 사람들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주 들르곤 했었죠. 어머니는 이들을 위해 음식을 항상 여유 있게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 시절엔 밥 굶는 이들이 많았거든요. 언젠가 어머니께 '우리 식구끼리 밥 먹으면 안 되냐'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머니는 '사람 사는 집에 손님이 끊이지 않아야 잘 되는 집'이라며 저를 달래 주셨어요. 무언가 있으면 나누며 살라는 의미였죠. 그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그의 고향은 충북 충주다. 고교 시절 뇌졸증에 걸린 어머니를 간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사람을 보살피기 위해 선택한 전공이었기에 응급처치 강사로도 활동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조금씩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간호장교가 되려는 생각을 품었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서 포기했다. 남편을 따라 대구로 온 이후에는 초등학교 양호교사로 23년간 근무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한 건 퇴직 후인 1995년 무렵이다. 대구 북구에 살고 있었기에 북구자원봉사센터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특히 장애인을 돕는 일에 마음을 많이 썼다. 10대 때부터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봐왔던 영향이 컸다.

2006년 적십자 봉사회에 입회한 이후부터는 더욱 바빠졌다. 고정적인 자원봉사 활동 외에도 각종 재난·재해 현장에는 빠짐없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2016년 대구 서문시장 4지구 화재, 2019년 중구 포정동 사우나 화재 등 지역은 물론, 태안 기름유출 사고나 강원도 폭설 피해 지역 복구 등 전국의 재난·재해 현장을 누비며 도움을 전했다.

특히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에서 폭발적으로 늘었을 때 국내 최다 확진자가 있던 동산병원에 가장 먼저 자진해 들어가서 동료 봉사원들과 기부 물품을 배분하고 급식 봉사 활동을 했다.

"감염이 두려워 모두들 가기를 꺼리던 때였어요. 저 또한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간호학을 전공했기에 '예방 수칙만 잘 지키면 괜찮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적십자 봉사회 동료들을 설득해 바로 동산병원으로 달려갔죠. 좀 누그러졌을 때 다른 단체에 넘겨줬고요. 이후엔 환자이송을 위해 구급차를 타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119구급대원들에게 20일 동안 급식을 제공했죠."

백인계(왼쪽) 적십자 봉사원이 2019년
백인계(왼쪽) 적십자 봉사원이 2019년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가입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공

◆"봉사는 주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

대한적십자사엔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이란 게 있다. 1억원 이상 개인 기부자 모임이다. 그는 2019년 4월 대구에서 여섯 번째로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기업인이 아닌 일반인이 이 모임에 이름을 올린 건 흔치 않은 사례다.

"남편이 2018년 급성 백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도 큰 슬픔에 한동안 많이 힘이 들었는데 어느 날 문득 좌절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부의금과 사망보험금을 보태 기부하고 다시 봉사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제가 노력해서 번 돈이 아니니 사회를 위해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아이들도 흔쾌히 찬성해줬고요." 그렇게 시작한 기부금 누적액은 1억 7천만원을 넘어섰다.

그에게 기부나 봉사는 '주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남에게 준다고 생각하면 아까운 마음이 들 수 있지만 나눈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 된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이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 건강한 사람이 장애를 지닌 사람을 돕는 건 우리 사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다.

그는 대가를 바라며 하는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나눔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몇 년 전 양호교사 시절 관심을 갖고 돌봐 준 제자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행복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눈에 띌 만큼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학생이 있었어요. 마음이 쓰여 많이 챙겨 주고 돌봐줬죠. 어느 날 동료 봉사원으로부터 누군가가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저를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어요. 알고 보니 그 학생이었던 거죠. 제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보람 있고 행복했었습니다."

그의 하루 일과는 봉사로 가득 차 있다. 목요일을 오전을 제외하곤 매일 오전과 오후 고정적인 봉사활동이 잡혀 있다.

그는 남을 도와주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봉사를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이 얻는 게 더 많다고 했다. 봉사를 하면 할수록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여건이 되고,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다'란 말이 있습니다. 별로 나눠 먹을 것 없는 콩알이라도 이웃과 나눌 수 있다는 말입니다. 행위의 크기가 아니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은유한 표현이죠. 꼭 돈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힘들 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주고 손 한 번 잡아 주는 것도 상대방에게 큰 용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항상 남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적십자 봉사원은 77세가 되면 은퇴를 하게 된다. 고령인 만큼 자신의 건강도 돌보라는 의미다. 2년쯤 시간이 남았다. 이후엔 명예 봉사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은퇴할 때까지 기부금 2억원을 채운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소비를 줄이며 살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나눔의 기쁨을 알아 가는 게 늘 즐겁고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 까지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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