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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별별시선] 로마에서 보낸 10·26과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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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과는 같은 나무의 이름만 다른 뿌리
남정욱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남정욱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남정욱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유럽을 몸으로 느껴보겠다고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를 한 달 남짓 돌았던 적이 있다. 해외여행을 괜히 사나흘만 가는 게 아니었다. 집 떠나고 열흘 지나니까 사지(四肢) 안 아픈 데가 없고 배는 고픈데 입에 맞는 건 없고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구미(歐美)를 배워보겠다며 2년 가까이를 타향으로 떠돈 일본 메이지 시대 사절단이 얼마나 독한 인간들이었는지 그때 실감했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가 이탈리아 로마였다. 딱 이맘때였는데 저녁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머리 희끗한 주인에게 부탁을 했다. 오늘(10월 26일)은 조선의 카이사르가 부하에게 살해당한 날인데 그가 마지막 마신 술로 추념하고자 하니 위스키 잔을 좀 빌릴 수 있겠냐고. 주인은 선선히 잔을 내줬다. 그러면서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오야붕을 배신한 놈은 맷돌로 갈아버려야 해."

이 양반, 누가 이탈리아 사람 아니랄까 봐 단테의 '신곡' 정도는 기본으로 뗀 모양이다. 책의 제34곡을 보면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얼어붙은 호수 한가운데 루시퍼가 있는데 세 얼굴과 세 입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입은 죄인 하나씩을 쉬지 않고 씹고 있다. 그중 둘이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와 실행자다.

카이사르 인생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 로마 '공화정'의 종말을 앞당긴 거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원로원의 눈물 어린 만류에도 카이사르는 뜬금없는 주사위 핑계를 대며 도강(渡江)을 감행했다. 우호적인 사람들은 그가 공화정 말기의 혼란을 수습했다고 말한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가 제정(帝政) 야욕에 불타 공화정을 붕괴시켰다고 말한다. 분명 같은 사건인데, 그렇다면 대체 카이사르의 공화정 타격은 공(功)일까 과(過)일까.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돈만 밝힐 줄 알았지 법에는 무지했던 한 유대인 영감을 이른바 배웠다는 놈들이 털어먹는 이야기다. 빌린 돈을 못 갚으면 살 1파운드로 빚을 대신하겠다는 신체 포기 각서를 오로지 '살'만 1파운드로 몰아가면서 골탕을 먹이는 것이다.

푸줏간에서 삼겹살 한 근을 달라고 하면 그 한 근에는 당연히 소량의 피(血)가 섞여 있다. 그러니까 살 1파운드는 마침 그 지점을 통과하던 혈액 일부까지를 포함하는 게 상식이다. 뜬금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를 꺼낸 건 공적(功績)과 과오(過誤)가 대부분 동전의 앞뒷면이고 한 몸인 까닭이다. 공적은 대부분 과오에 의해 가능하고 과오의 대가가 바로 공적이기 때문이다.

느려 터진 원로원의 시스템으로는 나날이 불어나는 제국의 몸집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공화정을 고집했더라면 제국은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진즉에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공화정을 죽이는 대신 로마를 살렸다.

흔히 박정희 시대를 군사 독재라고 부른다. 그러나 군인도 아니었고 야당도 있었다. 말장난하자는 게 아니다. 독재라고 하기엔 자격 미달이었다. 비슷한 시기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제대로 된 독재자들에게 배워도 한참 배워야 했다.

박정희의 시대는 '유보의 시대'였다. 민주주의는 시대를 앞질러 너무 일찍 왔고 국민들에게는 자유의 향유보다 한 그릇의 밥이 더 중요했다. 이 시차 부조화를 박정희는 '나중에'라는 방식으로 돌파했다. 그리고 그 유보 덕에 대한민국은 중공업이라는 걸 했고 북한과의 군사적인 격차를 좁혔다.

박정희가 머리와 위장의 욕구 사이 간극을 메우는 과정은 아름답지 않았다. 일방통행도 있었고 폭력도 있었다. 그래서 가능했던 거다. 1970년대 초반,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90위권 전후였던 대한민국에 필요했던 리더는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을 내세웠던 모호한 마키아벨리스트였을까 아니면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손에 온갖 더러운 것을 기꺼이 묻히고 직진한 카이사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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