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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비춰 본 한국-김성열] 원무과가 없는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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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열 전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김성열 전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김성열 전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정산 없이 나온 퇴원길

캐나다 의료를 이야기하면 "돈은 안 들지만 오래 기다린다"는 말부터 나온다. 진료나 수술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있고, 그 때문에 제도의 평가도 엇갈린다. 다만 대원칙으로서 환자의 상태가 얼마나 중하고 위급하냐에 따라 진료의 순서가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친하게 지내는 한 지인의 아들이 크게 아팠다. 가족 주치의 소견서를 들고 종합병원에 갔고, 곧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밤낮으로 집중치료가 이어졌지만 좀처럼 차도가 나지 않았다. 두 달 넘게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 병실로 옮겼고, 몇 주를 더 보내고서야 퇴원했다. 거의 석 달이었다.

퇴원하는 날, 지인은 간호사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아들과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 어디에 들러야 하나 둘러보았지만, 넓은 로비에는 안내 데스크만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은 그대로 병원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지인은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의 치료까지 석 달 가까이 입원했는데 이렇게 그냥 가도 되나 싶었던 것이다. '나중에 청구서가 오면 내야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공공의료체계가 필수적인 병원 치료비를 부담한다는 사실을 지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원 중에는 '혹시 큰돈이 나오면 집을 팔아서라도 감당해야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머리로는 '무료'임을 알았지만, 오랜 치료에도 자신이 낼 돈이 없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청구서는 오지 않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는 2020년부터 주민에게 부과하던 의료보험료도 폐지했다. 쉽게 말해, 매달 내는 의료보험료도 없다는 이야기다.

◆치료비보다 아이에게 마음을 쏟도록

최근 서울대병원 소아심장외과 김웅한 교수의 인터뷰를 보았다. 수술을 앞둔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가 살 수 있는지와 함께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도 반드시 묻는다고 한다. 은퇴를 앞둔 김 교수는 그 부모들에게 무엇보다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치료비 걱정은 나라에 맡기고 아이에게 마음을 쏟으라."

우리나라에도 건강보험이 있고, 중증질환의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가 있다. 그럼에도 치료가 급한 순간에 부모가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면, 그 가족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당장 낼 돈인지, 앞으로 감당할 돈인지, 제도의 도움을 어디까지 받을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불안일 수도 있다.

부모가 치료비 걱정을 덜고 아이에게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조건을, 사회가 자신의 과제로 삼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살리는 의술과 함께 그 가족을 지탱할 제도도 필요하다.

◆국가를 믿게 하는 경험

"형편이 되면 나중에 이 병원에 꼭 기부해야겠다."

지인이 내게 직접 한 말이다. 아들이 돌아온 안도감과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이 함께 담겨 있었을 것이다. 집을 팔 각오까지 했던 아버지가 이제는 그 병원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아픈 순간에 사회가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경험이, 그 사회를 믿고 돕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국에서 그가 경험한 사회의 보호였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하다. 치료가 길어져도 가족의 삶까지 무너지지 않도록 국가가 보장할 기준을 세워야 한다. 필수의료비를 환자가 부담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할 것인지, 국가가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 국민이 함께 정해야 한다. 이는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라는 국가 운영의 철학에 관한 문제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책임이 한 사람의 삶에 실제로 닿을 때, 국가를 믿으라는 말도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나라에 재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놓치고 있는 것은 어디에 먼저 쓸 것인가라는 우선순위가 아닐까. 모든 의료비를 당장 국가가 감당하기는 어려워도, 국민의 생명과 가족의 삶을 지키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목표를 구체화한다면, 해마다 계획을 세워 그 목표를 단계적으로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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