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소 3차대전도 계획

6.25당시 스탈린과 모택동은 남침에 그치지않고 3차 세계대전도 불사할 생각이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26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북한 김일성이 남침 5개월전 스탈린에게 허가를 요청했음도 확인됐다고 입수자료를 인용, 보도했다.아사히에 따르면 이같은 사실은 구소련의 주요 역사문서 관리를 총책임지고있는 러시아대통령 군사담당고문 드미트리 볼코고노프씨(65)가 공개한 자료가운데 스탈린시대의 한국전쟁 관련 자료에서 확인됐다. 이 자료는 6.25당시전황이 북한측에 불리했던 50년을, 스탈린이 모택동에게 참전을 촉구한 전문에서 "전쟁을 피할수 없다면 일본군국주의가 재건될 수년후가 아닌 지금 해치우자"고 강조, 소련과 중공의 양수뇌가 3차대전까지 상정한 한국전 참전을 결정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공개자료에서 전쟁발발전 북한과 소련간의 움직임을 보면 남침이 사전면밀히 계획됐음이 확인되고 있다. 즉 50년1월 슈토이코프 주북한 소련대사가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은 명확하게 "김일성이 남에의 공격허가를 요청하고있다"고 보고, 5개월전부터 준비를 하고있음을 보여주었으며, 5월말에는 ~전쟁은 확실히 6월말 개시"라고 보고, 그때 이미 6월25일 남침이 확정됐음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스탈린 비밀 문서 요지*

*49년 3월5일 스탈린.김일성회담의 기록 (오후8시부터 크렘린서 1시간50분간계속)

김일성:남한에는 아직 미군이 있다. 북한에 대한 책동이 강화되고 있다. 북한은 육군은 갖고 있으나 해상 방위력이 결여돼 있다. 소련의 원조가 필요하다.

*스탈린:미군은 남한에 몇명이나 있는가*

김일성:약 2만명 있다.

슈티코프:약1만5천명에서 2만명이다.

스탈린:남한 군대는 없는가.

김일성:있다. 약 6만명이다.

스탈린:(농담으로) 그들이 무서운가.

김일성:아니 무섭지 않다. 그러나 해상전투 부대가 필요하다.스탈린:어느 군대가 강한가. 남인가 북인가.

박헌영:북한 군대가 강하다.

스탈린:모든 원조를 다하겠다. 북한에는 전투기도 필요하다. 남한군에 침투,사람을 배치하고 있는가.

박헌영:우리쪽의 인간이 저쪽에 침투하고 있으나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스탈린:좋다. 지금 움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마 남한도 북한에 사람을잠입시키고 있을 것이다. 주의와 경계가 필요하다.

*50년 1월19일 평양주재 슈티코프 소대사로부터 스탈린에 보낸 전보중국 대사관 송별연서 김일성이 나한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해방이 끝난 지금 다음은 조선 해방이 문제다. 게릴라로는 일이 정리되지 않는다. 모택동은 남한을 공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김일성으로서는 스탈린과 만나 남한 해방을 위한 허가를 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일성은 북으로부터 남으로의 공격 허가에 관해 스탈린에게 개인적인 보고를 하고 싶다고 요구하고있다. (스탈린은 1주일이상 숙고한뒤 모택동에게 신중한 암호 전문을 보냈다.모는 완전한 성공의 확신이 선다면 논의해도 좋다고 애매하게 대답했다)*김일성을 위한 스탈린 자필의 암호 전문 원고

50년 1월19일의 연락 받았다. 이러한 큰 문제는 준비가 필요하다. 커다란 위험이 없도록 일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만날 용의가 있다. 우리들은 매년 2만5천t의 연을 받았으면 한다. 기술적인 원조를 할 용의가 있다. (한번더 북경에서 회담한후 2월9일 평양의 무력 통일 의도를 승인, 대규모 작전 준비에 들어 가도록 허가를 했다. 북한군 참모본부에는 소련 군사 고문이 참여, 공격작전이 진행됐다)

*50년 5월 스탈린이 모택동에 보낸 전문(필리포프라는 암호명으로)동지 모택동. 조선의 동지와 가진 회담에서 필리포프와 그의 친구는 통일에착수하고 싶다는 조선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에 관해 중국.조선의 동지가 공동으로 최종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조건으로붙어 있다. 중국의 동지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문제는 새로운 토의때까지 연기되지 않으면 안된다.

상세한 회담 내용은 조선의 동지가 당신에게 이야기 할수 있다. 결과에 대한연락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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