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날마다 좋은날

"더위에 어떻게 지내십니까" 요즘 안부 전화는 으레 이렇게 시작된다. "그저그렇게요"라든가 '죽을 지경'이라는 말 대신에 나의 대답은 "날마다 잘 지냅니다"이다. 옛 선사들의 아리송한 문답을 상기할 것도 없이 실로 온몸으로느끼는 '날마다 좋은 날'이다.섭씨 36도의 찌는 더위인들 몸뚱이가 없었다면 어찌 땀이라도 흘리겠는가.가령 마음 한자리 홀연히 증발해버린다면 어찌 미혹된 일인들 그 많은 번뇌망상을 거느릴 데 있겠는가. 그러니 한여름 더위에 묻어나는 사고팔고의 일상생활 그대로가 날마다 좋은 날일 수 밖에.

늘상 책상 앞에 붙여놓고 음미하는 '보왕삼매론'에서는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며, 내뜻에 맞지않는 사람들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고, 장애가운데서보리도를 얻으라'고 한다.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귀하게 여겨지는 것도 찌는 더위가 있기 때문이고 초록의 풀, 나무가 눈을 싱그럽게 하는 것도 그만큼 땅위의 세상살이가 물마르고 번잡한 때문이니, 지금 여기 앉은 자리에서 감득되는 모든것들이 실은 우리네 삶과 실존을 생생하게 떠받들고 있는 터이다.

사람사는 일이 어차피 그물에 걸린 물고기 같아서 무엇이든 피하려고 하면할수록 더 곤란을 깊게 한다.더위 따위, 들끓는 번뇌 따위 벗어놓으려고 할것도 없이 아예 그 속에 깊이 몸을 맡기고 있으면 온몸이 액화되어 마침내 그물살에 오히려 서늘하게 동화된다.

잡힐 일도 건져올릴 일도 없는 지점, 역시 흐드러지게 기쁠일도 슬플일도 없는 지점, 인생의 찌는 더위마저 끌어안고 보면 정말 '좋은'날은 그 중도의 지점에 늘 서늘하게 열려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