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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박문, 한국문화재 유출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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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초대통감 이등박문은 고려청자 수집광이었고 수집한 고려청자를 일본왕과 귀족들에게 무더기로 선물로 주는등 한국문화재의 일본으로의 유출에앞장서온 것으로 밝혀졌다.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사종민씨는 26일 기념관회의실에서 있은 학술연구발표회서 논문 {일제의 문화재유출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일제의 문화재 유출유형중 개인에 의한 유출은 관리에 의한 직접적인 유출의형태가 있으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등박문이라고 지적했다.다음은 사종민씨의 논문발표 요지다.

일본의 변호사로 한국에 건너와서 이등박문밑에서 일한 삼댁장책은 {그당시의 추억}이란 글에서 이등은 주로 선물용으로 고려자기를 사들여 대체로30-50점을 단번에 선물로 주었으며 한때는 천점이상을 사들여서 시중에고려자기가 자취를 감춘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이등의 고려자기 수집열은 개성지방의 대규모 도굴을 불러 일으켰으며 수천점의 도자기중 뛰어난 것 103점을 골라 명치왕에게 진상하였을 뿐 아니라일본의 권력사회와 귀족들에게 무더기로 선물했다.

이등은 도자기뿐만 아니라 전적류도 다량으로 일본에 유출시켜 이등 사후그전적이 일본 궁내성 창고에 보관돼 있을 정도다. 역대총독중에 사나정의도 많은 양의 고려청자를 수집하여 일본으로 유출시킨 인물이다. 일본고고학자들도 고분발굴을 한뒤 학습참고용이라는 명목으로 발굴품을 가져갔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일본인들이 바다를 건너와 금광을 캐듯이 고분을 도굴했다.

단체에의한 유출에는 통감부나 총독부와 같은 일제식민통치기구에서 직접유출시킨 형태가 있으며 1910년 경술국치후 일제가 접수한 구한국 정부재산중의 가장 귀중한 문화재는 규장각 장서였다. 이중 한국침략에 도움이 될 상당수의 귀중본이 이등박문에 의해 빼돌려졌다.

해방후 한일회담때 반환되어진 문화재는 유출된 수많은 문화재에 비해비교가 안될 정도로 소량이었고 그나마 우수품은 고사하고 2류 3류품에 지나지 않았다.1933년 현재 해외소재 한국문화재 현황은 총17개국 5만4천6백56점인데 이중 일본에 소재하고 있는 문화재 점수는 그절반이 넘는 3만1천2백23점(57%)에 달한다.

사씨는 [한국전토의 유적지들이 참담한 피해를 입었던 주원인은 학술조사고적조사라는 명목하에 많은 무덤을 마구잡이로 파헤쳐 놓은 일제에 있으며일제는 이땅에서 마음대로 문화재를 파괴, 절취, 약탈, 유출하는 세계역사상유례없는 비문화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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