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악성-"도라도라"와 8과 신일본

12월8일.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일이다.

엊그저께 일본의 TV들은 일제히 당시 선전포고를 늦게 한 국제법위반이 워싱턴 주재 일본 외교관의 업무상 직무지연으로 인한 잘못이었다고 보도했다.5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범 행위에 대해 끝까지 일개 외교관의 '미스'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당시 기습성공의 '도라도라' 암호가 대본영에 통보됐을때 그들은 공격일자를8일로 잡은 택일에 대해 내심 승전을 자신했다.

그러나 '8'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패했다. 일본인이 좋아한다는 8은한자로 여덟팔자모양이 부채를 편것처럼 뻗어 펼쳐나가는 운세를 상징하는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전 세계적인 자동차회사이며 일본 기업의 얼굴인 도요타도 '풍전'이란고유 로고 글꼴을 영문발음의 가타카나체로 바꾸었다.

이유는 포항제철이 POSCO로 바꾼 것처럼 기업 이미지의 국제화를 노린 이유가 크겠지만 도요타의 가타카나 획수가 바로 8획이라는게 속까닭이라는 것이다.119 화재신고 전화번호도 요코하마 대화재가 1월19일에 일어난 것을 '기억'하자는 뜻에서라고 한다. 화재 경각심을 숫자속에 새겨넣을 만큼 일본인의 숫자에 대한 상징적 인식은 유별스럽다.

문부성이 상용한자를 굳이 1945자로 정한 것도 1945년의 2차대전 패전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그랬다고도 한다.

도쿄 타워의 높이를 333m로 한 것 역시 소화33년, 당시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타워를 세운다는 뜻에서 굳이 333m로 고집해서 세웠다.

일본의 갖가지 귀신은 8만가지가 넘는다는 얘기도 그러한 미신적이고 숫자에까지 주술적 의미를 담는 일종의 샤머니즘이 일본의 생활과 의식속에 매우뿌리깊게 녹아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겉보기에 비과학적 사고에 빠져있는것 같은 일본도 속을 들여다 보면그게 아니라는게 일본을 좀더 깊이, 오래, 알아온 사람들의 지적이다.최근 한국서 '일본은 없다'는 책과 '일본은 있다'는 책이 서점에서 서로 맞붙고 있는 모양인데 일본 현지의 지식층 교포들중에는 '일본은 없다'쪽이 "겉만 봤다"고 지적한다.

어느쪽이 잘봤든 도라도라시대이후 도요타 자동차 수출경쟁시대에까지 여전히 8에 대한 미련한 사고를 그대로 지니면서도 속으로는 놀랄만큼 빠르게 바뀌어가는 신일본의 속모습은 경계하고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무라야마 신임 총리를 본뜬 흰눈썹 긴 인형이 날개돋친듯 팔리는 데서 정치에까지 상혼이 파고드는 헐렁한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총리관저에 들면서 이불 두채, 양복 두벌만 갖고 들어가는 모습에서 또다른 일본정신을 읽을 수있어야 한다.

북쪽 홋가이도에서 가고시마 끝까지 어느 도시 어느 길거리에서도 교통순경을 볼 수 없는 나라이면서 교통질서는 어느나라보다 더 잘 지켜지는 무서운나라.

오늘의 교통사고 세계 1위라면서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술을 파는 우리쪽의비합리보다 차라리 8자에 연연하는 불합리를 보이면서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 일본의 신사고가 더 합리적이다. 키가 겨우 10㎝밖에안자라면서도 꽃 크기는 그대로인 신종 해바라기를 재배해내고 가라오케도위성중계로 곡목을 3차원 영상으로 방영하며 무균 돼지고기 '사시미' 해먹는'귀신'들.

지금 우리는 그런 귀신들로부터 기업연수나 기술연수를 하러 뻔질나게 일본을 드나든다.

그러나 일본에서 곧잘 하는 말.

"아홉마리 소의 털하나(구우노일모)"

'기코만' 간장 사장이 죽으면서 관에 못을 박는 순간에 비로소 장남의 귀에만 대고 간장제조의 마지막 비법을 전한다는 일본인.

그들이 아홉마리의 소 중에 털하나 정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면 잘 가르쳐 주는 것이라는 경계심을 풀고서는 도라도라 패전후 50여년이 지나도 침략범죄를 인정않고 여전히 도요타 획수를 8로 고집하는 그들을 결코 이길수 없다.살아있으면서 미리 장례식을 치르고, 유언은행을 운용한 나이 80에 우주유영연습을 하며 우주여행을 준비하는 신일본인들의 의식개혁은 흥미롭다기보다차라리 소름이 끼친다. 8만가지 귀신을 믿고 8자를 좋아하는 그들이 2088년8월8일쯤 자위대를 앞세우고 제2의 도라도라를 타전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상상은 지나친 피해망상일까. 진주만 기습기념일을 앞두고 도라도라와 8과 오늘의 일본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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