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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빚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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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목회하느라 바빠서 못가고 나이 40이 넘어서 미국에 유학을 갔더니 수많은 한국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타문화권에서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근 30여년간 영어 공부를 했는데도외국 사람과 직접 만나 보니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말이 부드럽게 나오지않았다. 발음부터 시작해서 한국에서 케케묵은 영어를 배웠기 때문이었다.그 다음에 어려웠던 일은 경제 문제였다. 소수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고생스럽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해서 각양각색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온갖 수모도 받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많은 유학생들은 크게 두개의 부류로 구분되었다. 한쪽은 고생해서 공부했으니 밑천을 뽑아야겠다는 사람이고, 한쪽은 빚진 자의 자세였다.10년이상 죽을 고생을 해서 학위를 받고 나면 대부분 형편이 달라진다. 이곳저곳에서 초청이 오고, 좋은 직장에서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한국에서 직접좋은 인재를 조국에 유치하기 위해서 교섭하러 온다. 한국을 위해서 일 좀해달라는 말에 우선 대우부터 알아 봐서 대우가 흡족하지 않으면 '내가 어떤고생을 해서 받은 학위인데 이런 대우로는 못간다'라고 한마디로 거절한다는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어느 교수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6·25 전쟁전에미국에 가서 공부를 했는데 6·25전쟁이 터져서 수많은 청년과 학생들이 전쟁터에 가서 실명하고, 팔다리가 잘리고, 포탄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TV를통해 보고 그는 기숙사 제일 밑바닥 지하실에 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내 친구들은 총칼로 싸우고 나는 펜으로 싸우리라'. 몇년후 그는 훌륭한 학위를받았고 귀국 교섭을받은 자리에서 상기된 얼굴로 "내 친구들은 나라를 위해서 불구자가 되고, 목숨을 잃었는데 내가 무슨 대우를 받겠습니까? 여러분나는 내 조국과 내 친구들에게 빚을 갚으러 가야 됩니다"라고 했다.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부모 형제와 스승과 조국과 이 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사람들을 생각하며 머리가 숙여지고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핑 돌았다.

김창렴씨〈대구 동신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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