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봄비가 내리더니 베란다 가득 햇살이 한껏 좋다. 장독 뚜껑을 열고까맣게 우러난 장맛을 본다. 오늘저녁 식탁엔 상큼한 봄나물이라도 올려야할까보다. 오랫동안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탓인지 쓸수록 수더분하면서도 투박한 모양의 저 장독이나 옛정취가 담긴 것들을 보면 웬지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가 생기는듯 하다. 하지만 갈수록 플라스틱 김장독이다 뭐다하여 장독도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되어 생활의 저켠으로 밀려나기 일쑤인 것 같다. 지금도 시골집 한적한 뜨락에라도 서게 되면 높직한 토담아래 채송화며 맨드라미 울타리 뒤로고추잠자리가 한가로이 맴을 돌던 장독대…. 마당 한가운데 검은빛을 띠고 윤기까지 자르르 흐르는 장독들을 보면 그 집 아낙네의 맵고 바지런한 손끝이 느껴진다. 정말이지 예전의 우리 어머니들은 저 장독에 기울인 정성만큼이나 억척스럽고도 부지런하셨다.상한 밥풀도 깨끗이 씻어 풀을 쑤시고, 어쩌다 잘못하여 금이 간 독을 땜질하듯 무엇이든 꿰매어 다시 쓰곤하셨다. 나는 가끔 우리 어머니의 굵고 거칠어진손앞에 나의 손은 얼마나 곱고 깨끗한지 부끄러워진다. 고무장갑 한켤레면 너끈히 해치웠을 김장을 몇접씩이나 손을 호호 불어가며 했노라던 그 시절에 비하면 참 살기 좋아졌다. 하루가 다르게 신상품이 나와 우리를 유혹하고 접시나찻잔, 램프와 스푼에서부터 멀쩡한 커튼과 장롱을 바꾼다. 새로움을 추구함은분명 변화를 뜻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저변에 깔린 싫증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랑의 활시위가 끊어진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계절, 가정의 달 오월이 우릴 부른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조물조물 무쳐내시던고향의 맛, 사랑의 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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