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은 서양의 과학기술 수용에 적극적이었지만 그것을 찬탄만 한 것은 아니었다.그는 서양과학을 통해 일깨운 지구나 우주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전통사상과 결부, 우리의 이론을 심화 혁신시키는 계기로 삼았다.지구는 회전한다는 것, 우주는 무한하다는 것등 서양과학지식을 통해 우주는 기(기)로 가득차 있고, 이 기가 이합집산해 만물이 생성된다는 이치를 자득한 담헌은 주자학의 이기이원론(이기이원론)에 눌려 꽃을 피우지 못했던화담 서경덕(서경덕)의 기학(기학)을 계승, 당시 사상계의 논쟁거리였던 인물성동이논쟁(인물성동이논쟁)을 결판내고자 했다.
인물성 동이논쟁이란 맹자의 성선설에 입각한 주자학의 질서체계가 위기에봉착한 중세해체기 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나타난 철학논쟁으로 전시대 사단칠정논변(사단칠정논변)에 이은 조선후기 유학의 최대쟁점이었으며, 이 논쟁을 그쳐 우리 사상의 지평이 중세기적 껍질을 벗고 근대로 나아가는 단초가 열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논쟁에서 인물성이론자(인물성이론자)들은 사람과 금수의 생활방식이다르듯 인성(인성)과 물성(물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본 반면 인물성동론자(인물성동론자)들은 세상천지의 만물이 이(이)의 주재(주재)에 따라 생겨난다면 한 뿌리에서 나온 성(성)은 사람이나 동물, 물건이 다를바가 없다고 주장해 맞섰지만, 두 주장이 모두 이기이원론(이기이원론)의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어 사단칠정론과 마찬가지로 이(이) 기(기) 어디에 비중을 더 두느냐의차이만 있을 뿐이어서 새로운 시대의 이론으로는 진전될 수는 없었다.그럼에도 불구 인물성이론자들은 인성과 물성에 차별을 두는 자신들의 주장을 오랑캐인 청나라를처야한다는 북벌론(북벌론)과 반상(반상)의 기존사회체제 유지를 위한 근거로 삼고, 인물성동론자는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어서논쟁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담헌은 인물성이론이나 인물성동론 모두가 이(이)는 선하고 완전한것, 기(기)는 악하고 불완전한 것이라는 종래의 이기이원론(이기이원론)에 입각,주자학의 윤리관을 절대화할 뿐이라며 둘다 부정하고 기일원론(기일원논)의입장에서 이를 극복 중세기적 사고를 청산하고자 했다.
그는 사람(인)과 물(물)은 같은 기(기)를 서로 다르게 지니고 있을 따름이라하고 물에서 사람을 본다면 사람도 물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 새로운 상대론적 가치관을 정립함으로써 당시 지배적이었던 이기(이기) 성정(성정) 시가(시가) 귀천(귀천)화이(화이)천지(천지)에 관한 이원론적인 차등론을 불식, 변화의 시대에 맞는 근대적사고의 기틀을 마련했다.그리하여 그는 성(성)은 마음의 바탕이고 정(정)은 그 작용이어서 구별될따름이지 한쪽이 선하고 다른쪽은 악할 수 있다는 주장을 부당하다고 하고,문학도 한시(한시)라야 진정한 문학이고 노래(가)는 한시로 표현하고 남은흥취를 전하기 위해서나 소용된다고 하던 문학관을 비판, 진실되고 꾸밈이없는 정(정)을 나타내는 백성들의 노래가더 소중하다고 했다.또 사람을 반상(반상)으로 구분, 귀천(귀천)을 따지던 종래의 신분관습도부당하다고 하고, 오직 능력에 따라 기능을 분담하는 것이 사회조직의 정당한 원리라고 주장, 농민의 아들이라도 정승이 될 수 있고 능력이 없다면 정승의 아들이 수레를 끌어도 원망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와함께 중국에서 시작된 중세보편주의 문화규범인 화(화)를 우리도 갖추어 이(이)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던 오랜 주장을 반박, 화이(화이)는 내외(내외)로 구분되는 상대적 개념일 따름이어서 어느 나라든지 자기를화(화)라하고 남들은 이(이)라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고, 공자(공자)가'춘추'(춘추)를 지어 주(주)나라를 높인것은 공자가 주나라 사람이기 때문이며 공자가 오랑캐땅에 살았다면 그곳의 역사를 '춘추'라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담헌은 세계 각나라가 자기의 문화와 역사를 옹호하려는 것은 당연지사이며 그렇게 하는 것을 서로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새로운 민족적 근대보편주의 단초를 마련했다.
담헌은 이같은 사상에서 당시 청나라를 야만족인 여진족이 만든 나라기 때문에 청나라 문물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집권사대부층의 근시안적 시각을 비판, 오랑캐의 나라라도 우리보다좋은 습속이나 문물이 있다면 서슴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해 후대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서유구등 북학파 실학자들의 이용후생의 활동토대를 마련했다.
이같은 여러 주장 가운데서도 담헌의 문학론은 우리 문학사상사에서 획기적 의의를 가진다고 하는 것이 문학이론가들의 견해이다.
오늘날 전하지는 않고 서문만 '담헌서'(담헌서)에 수록된 책 '대동풍요'(대동풍요)의 서문에서 담헌은 어리석은 사나이나 아낙네가 나무하거나 농사지으면서 부르는 노래(가)가 비록 격식에 맞지 않다해도 그 기에는 자연에서나온 천진스러움이 배어 있어 중국의 것을 이것저것 모아 다듬으면서 만든사대부의 한시보다 낫다고 했다.
우리글로 된 것만이 진정한 문학이라고 주장, 국어국문학의 가치를 입증하는 이론은 김만중(김만중)이 제기했고, 시조가 한시에 못지않은 것이라는 주장도 김천택(김천택)이 이미 내세웠다.
그러나 담헌은 국어로 된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사실보다 일반백성의 생활속에 살아있는 자연스럽고 천진한 정(정)을 그대로 나타내므로 더욱가치가 있다고 함으로써 김만중이나 김천택이 이르지 못한 데까지 이르렀다.물론 반상(반상)계급의 철폐, 화이론(화이론)의 극복, 우리의 주체적 역사관확립, 국문학의 우월성 토대마련등의 과제는 담헌이 처음으로 주장한 것은아니었고 실학의 맹아기서부터 경세치용실학파에 이르기까지 줄곧 이어져 왔지만 기일원론(기일원론)의 철학적 이론에 근거 제반문제를 총괄적으로 논파한것은 담헌이 처음이었다.
국문학자 조동일교수는 우리가중국의 학문을 들여와 이를 재창조해서 우리것으로 만들고 중국보다 더욱 발전시켜 우리의 창의성을 내보였던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 담헌은 서양의 지식을 처음으로 우리의 것으로 이론화하는시도를 보였다고 평가하고, 오늘날 과학기술을 토대로한 서양의 학문방법에얽매여 있는 우리학문의주체성과 창조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담헌 학문태도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문학사상사시론''문학사와 철학사의 관련양상' '우리학문의 길')
담헌의 성과는 19세기 중엽 최한기(최한기)에 이어져 우리학문의 근대적방법론을 마련하게 되는 결실을 얻게 된다. 〈최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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