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 일외상 방한거부 배경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총리의 한일합방왜곡발언으로 촉발됐던한일 양국간 긴장국면이에토 다카미(강등융미) 일본 총무청장관의 망언 처리를 둘러싸고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정부는 에토장관이 "한일합방으로 한국에도 좋은 일도 했다"는 발언에 대해 일본측이 에토장관을 '엄중주의'하는 식으로 적당히 수습하려는데 대해묵과할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선 것이다.

그 구체적인 표현은 일본측이 과거사파문을수습하고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정지작업을 위해 내한 하겠다는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일본외상의 방한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무라야마 총리 발언의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재연된 에토 장관의망언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측이 취한 미지근한 조치를 지켜보고 이번에는 그대로 넘어갈수 없다는 초강경 입장이다.

공노명외무장관이 10일 오후 외무부를 자진해서 찾아온 야마시타 신타로(산하신태랑) 주한일본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고노외상이 방한해도 생산적인 협의가 안되기 때문에방한의미가 없다"며 방한자체를 매정하게 거부해버린 것은 이 때문이다.

공장관은 나아가 "우리는 일본정부가 취한 에토장관에 대한 일본 정부의조치내용에 대한 해명을구차히 들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정부의단호한 의지를 되새겨보고 어설픈 해결책을 남발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의뜻이 느껴진다.

일본정부는 '과거사' 긴장국면이 더이상 지속될 경우 임박한 APEC정상회의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 가급적 조기에 수습책을 마련하기 위해동분서주하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에토장관 망언파문이 일어난 초기 무라야마총리는 에토장관을 해임하는 것등을 심각하게 고려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자민당 일부를비롯한 보수세력이 일본내 복잡한 국내정치 상황을반영하며 에토장관에 대한 해임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는 관측이다.

특히 토대가 허술한 일본의 현연립내각구조도 일본정부의 '결단'을 흐리게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APEC 정상회담이 임박한 점을 고려해서 일본정부가 납득할 만한 '적절한조치'를 내리면 이번 주말 고노외상이 방한할 경우 양국간 '과거사 국면'을 잠시 진정시키고 일본에서 열리는 APEC정상회의 스타일을 망치지 않으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결국 에토장관에게 주의를 주는 미온적인 방법으로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일본정부의 의사가 드러나면서 한국 정부의 대응은 확고해졌다.어차피 오사카 한일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도 한일합방조약의 합법성을 주장한 무랴아먀총리의 과거사 발언문제가 될것이 뻔한 상황인데 일본정부의 대응이 이 정도로 소극적이라면 우리측이 구태여 저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하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라야마 발언이 터지자 강력한 어조로 한반도 분단에 대한 일본의책임론까지 언급했던 김영삼대통령의 대일정서를 감안하면 정부의 강경 대응은 더욱 분명해진다.

김대통령의 강경한 입장은 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됐으며외무부로서도 그같은 분위기를 외면할수 없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뿐만아니라 되풀이되는 과거사망언에 쐐기를 박지 않고서는 그렇지 않아도 신보수 우익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제2, 3의 에토장관이 줄을 잇고나타날 것이란게 정부의 판단이다.

현재로선 한일간 과거사 대결국면이 어디로, 어떻게, 어디까지 나아갈지를예단하기는 힘들다. 분명한 것은 일본측에 공이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본측의 해법은 매우 촉박하게 제시돼야 하는 상황이다.고노외상의 방한 계획까지 거절당한 일본이 여전히 우리측의 정서에 미흡한 카드를 제시할 경우 80년대 초 양국관계를 험악한 지경에까지 몰아놓았던'일본 교과서 파동'이 재연될 가능성마저 거론되는 형국이다.외교가에서는 한국정부의 일외상 방한거부라는 강경한 외교카드가 에토 장관에 대해 미지근한 조치를 취할수 밖에 없었던 무라야마 총리의 입지를 도와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문제를 푸는 계기가 될수도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과거사 왜곡 발언으로현해탄에 일고있는 파랑주의보가 오는 13일 강택민중국국가주석의 방한을 코앞에 두고 전개되고 있는 것도 동아시아 3국 관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있는 시점임을 감안할 때 또다른 의미도 함축하고있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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