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安斗熙사건의 역사적 敎訓

백범 김구(金九)선생 시해 범인인 안두희(安斗熙)씨가 한 시민에 의해 살해됐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서릿발 같은 역사의 심판 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전율케된다.

안두희씨가 1949년 6월26일 민족 최고 지도자의 한분이던 김구선생을 암살한것은 우리 민족에게는 분노이자 씻을수 없는 수치였으며 또한 미스터리였다.

해방이후 혼란기에 송진우(宋鎭禹), 여운형(呂運亨), 장덕수(張德秀)씨등 쟁쟁한지도자들이 암살됐지만 유독 김구선생에 대한 국민적 모정(慕情)이 세월을 더해가면서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음은 그분의 올곧은 우국충정에 대한 국민적 평가 때문으로 보여진다.

상해(上海)임시정부 주석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광복이후에는 완전 자주통일을 주창하며 북과의 정치협상을 표방했던 그의 경륜은 47년이 지난 오늘날 오히려 민족의 스승으로서 손색이 없었음을 절감케 한다.

김구선생 시해 사건에서 우리는 민족주의의 큰 맥을 끊었다는 측면과 아울러,그 분이 그토록 사랑했던 동족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측면에서 국민적 분노를 느끼게 되는것이다.

게다가 이 사건의 정확한 배후와 목적등도 밝혀지지 않은채 비밀의 열쇠를 지닌 장본인이 피살됨으로써 사건의 진상은미스터리로 남아 역사의 뒤안길로 넘겨지게 됐으니 안타까운 일이라할 것이다.

진실을 밝혀 역사적 죄인 을 단죄하고 정의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나라 만들기의 기본일진대 우리가 김구 시해라는 역사적 사건을 외면해온무관심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안두희씨는 민족적 지도자를 시해, 역사의 죄인이 됐으면서도 어찌된 셈인지 감형을 받고 군납업으로 축재까지 하는등의 비호를 받았다는 사실에서는 어렴풋하나마 이 사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음직하다.

그 이래 우리 사회에 정치적 배경을 띤 불의와 비리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도진실 규명 이란 정의를 외면한 우리 시대의 잘못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우리는 47년전의 사건으로 한 인간이 목숨을 잃은데 대해 사필귀정을느끼면서도 착잡한 느낌을 감출길 없다.

민족 정기 를 지키기 위해서는 소멸시효에 관계없이 역사의 죄인은 단죄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우주보다 더 무겁다는 한인간의 목숨이 법의 테두리 밖에서 살해된 사실에서 우리는 업보(業報)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을 듯하다.

평생을 쫓겨 다니다 살해된 안두희씨의 일대기에서 우리는 새삼 역사의 심판이란 엄숙한 진실앞에 인간이 올곧게 살아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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