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선레이스-이수성(11)

본인의 극구 부인에도 불구, 내년 대선 예상후보를 거론할 때면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여권의 예상후보들중 눈에 띌 정도로 급부상하고 있다. 다름아닌 이수성국무총리다.

특히 야권은 이총리가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을 이홍구대표에 이어 두번째로 거론하는 등 그의 행보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최근 한 일간지가 여권 예상후보와 관련, 설문조사한 결과 여당의원들조차 예상후보군의 9룡중 이회창, 최형우고문, 이대표(각각1, 2, 3위)등에 이어 6위로 선정했다. 유력후보감으로 알려졌던 박찬종고문은 7위였다.

정치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당외 인사인 그에게 이처럼 후보가능성을 높게 매겨야만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선 김영삼대통령의 퇴임후 보장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란 점이다. 두 사람은 청와대 주례국정보고때는 물론 가끔씩 총리공관에서 마주앉아 저녁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신뢰관계가 돈독하다.반면 당내에서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이회창, 박찬종고문이 모두 김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에 처했던전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또한 차기대선 구도가 지역대결로 치닫게 될 경우 대선승패를 가를 것으로 예상되는 대구·경북지역에서 TK(칠곡출신) 란 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같은 측면에서 이대표를앞선다.

정치권과 학계 법조계등에 널리 포진하고 있는 인맥 역시 눈에 띈다. 서울고(8회)와 서울법대(14회)동문이 대표적이다. 안우만 법무장관, 강신옥 변호사, 허남훈 자민련정책위의장, 송언종 광주시장, 홍인기 증권거래소이사장, 송영수 한진중공업사장, 김의재 서울부시장, 정해창 전대통령비서실장등이 있다.

또한 문희갑대구시장 이의근경북지사 등 TK인사들은 물론 김종필 자민련총재 박태준 전포철회장등과도 오랜 친분을 갖고있다.

1년여 총리재임중 정치적 잠재력도 발휘했다. 특히 현정부 출범이후 해를 넘겨 가면서 커다란 고민거리가 돼온 노동관계법 개정에 대해 최근 재계와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내 이견을조정, 정부안을 도출해 내는 추진력을 보였다. 내각장악 의지도 강해 국무회의 상정 안건을 사전보고하지 않은 주무부처 장관을 혼쭐낼 정도다.

이에앞서 지난 95년초 서울대총장 선거 당시 유세과정에서 보여준 현실감각 역시 주목거리.다른 후보들이 앞다투듯 대폭적인 교수월급 인상을 약속하는마당에 "박봉에 시달리는 임시직 월급이 교수직만큼 오를때까진 한푼도 인상할 수없다"고 단언했는데, 이 말이 오히려 득표요인으로작용했다는 것.

학창시절부터 보스기질(리더십)이 돋보였다는 점도 지적된다. 교우관계도 서울고는 물론 경기·경복·용산고 등 서울시내 다른 학교에도 폭넓게 미칠 정도다. 소외계층에 쏟는 관심도 각별하다.총리일정중 매주 한 차례정도는 고아원 양로원 등 불우시설 방문이 끼여있다.

그러나 이같은 강점들중 상당부분이 과대 포장됐다는 등 대선후보로서의 가능성을 평가절하하는쪽도 있다.

TK인사로 꼽는 근거인 출신지 칠곡은 그의 성장지도 아니고 엄밀히 말해 선친의 고향에 불과하다는 것.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뒤 서울에서 혜화초등·서울중·고를 졸업했다. 물론 6·25피란길에 잠시 대구에 머무른 적은 있다. 스스로도 총리취임직후 회견을 통해 "TK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소외계층에 대한 애정에도 비판적이다. 철저한 쇼맨십에 불과하다거나 너무 온정주의적 성향이 강해 정치지도자로선 부적합하다는 것 등이다.

더욱이 총선을 1년정도 남겨둔 상황에서도 여전히 당외인사라는 점에서 뒤늦게 영입돼 대선주자로 나서기에는 시기적으로 무리다. 특히 당내 예상후보들로부터 반발이 거셀 것이다.그 역시 아직도 대선출마 가능성을 단호히 부인하고 있다. 지난17일의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대통령직을 수행하려면 무서운 결단력과 탁월한 역량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나에겐 그런정치적 능력이 없다"고 거듭 해명했다.

그러나 고교시절 장래 희망이 교수가 아니라 정치가였다는 점도 간과할 수없다. 수년전 한 일간지에 기고한'나의 젊은 시절'이란 글에서"고교시절 내 꿈은 정치에 있었다. 대학지원도 정치학과로 했는데 선친(이충영판사)의 뒤를 이어야 한다는 모친과 담임선생님간의 합의로 나도 모르게법대로 바뀌어 버렸다"고 술회했다.

실제로 그는 5공이래 정치권으로부터 숱한 영입 제의를 받아왔다. 80년대 초반엔 민정당과 민한당으로부터 총선출마를, 14대 대선때는 국민당으로부터 입당을 권유받기도 했다. 6공정부아래선민주화합추진위원 법무장관 등의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같은 제의를 거절해 나가는 방식이다. '아직은 몸담을 여건이 아니다'는식으로 대응해왔다. 이는 뒤집으면 여건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정계에 투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그가 바라던 여건은 현 정부아래서 총리직을 맡음으로써 충족됐다. 때문에 그가 대선 후보 가능성을 거듭 부인하고 있는 만큼이나 역설적으로 주변에선 출마 개연성쪽으로 쏠리고 있다.김대통령으로부터 출마 권유를 받을 경우 수용할 것이란 지적이다.

〈徐奉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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