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YS의 '마지막 승부'

"이 종 오〈계명대교수>"

1997년 새해 첫주는 여러가지가 뒤숭숭한 가운데에서 지나갔다. 사상 최악의 국제수지 적자와 노동계의 불안 그리고 도무지 아리송한 정국의 전망이 이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새해의 둘째주는 김영삼 대통령의 연두기자 회견으로 막을 열었으나 이는 연초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는 커녕 이를 더욱 증폭시켰다.

*무능 드러낸 불안대처

우선 연말이래 정치와 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전개되고 있는 노동법 개정 반대 파업에 대한 대통령의 사태인식이 너무나 안이하다. 경기악화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대응자세도 이에 못지않게안이하고 추상적이다. 무엇보다도 노동법, 안기부법 개정절차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래가지고 금년에 산적한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외교, 대북관계의 실타래같이 얽힌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질서있게 대응해 갈 수 있겠는가?

주가폭락, 명예퇴직 같은 결코 유쾌하지 못한 화제가 한국사회를 감돌고 있으며 대다수는 금년을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을뿐 아니라, 금년 이후에 관해서도 별로 확신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그러나 이런 식으로 금년이 지나갈 때에 김대통령은 역대 가장 무능하고 치적이 없는 대통령으로끝날 가능성이 높다. 재임기간 중 한푼도 돈을 먹지 않았다 는 사실은 물론 중요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무능과 무책임이 결코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재야와 야당시절 김대통령은 흔히 동물적 감각을 지닌 명승부사 라는 평을 듣곤 했다. 만약 청와대 4년의 세월이 김대통령의 야성을 완전히 마비시키지 않았다면 김대통령은 이제 다시 한번자기 생애 최고, 최후의 명승부를 한번 걸어 볼 때다. 이는 남미형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있다는한국의 상황을 역전시키는데 필요할 뿐 아니라 한평생 야심과 집념으로 가득찬 자신의 정치인생의 성패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재벌이라는 공룡 이 문제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집단은 청와대도 아니고 집권당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집단은 재벌로 불리는 30여개 정도의 기업군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정부를청산하였다고 해서 한국사회에서 권위주의 시대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재벌은 어느군사정권 못지않게 권위적으로 한국사회에 군림하고 있다. 만일 김영삼 정권의 개혁이 실패하였다면 이는 TK 수구세력의 태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재벌 길들이기에 실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경기악화가 심화되면서 재벌들의 정치적, 사회적 발언권은 더욱 강화되어가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재벌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과연 경제가 살아나고 선진사회에 진입할수있겠느냐는 점이다. 지금 한국사회에 재벌에 맞서서 사회적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집단이 어디에도 없다. 노동운동도 지식인도 그런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국가만이 아직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견제통한 사회균형 필요

김대통령과 집권당은 이제라도 재벌의 품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지지기반으로 하여 이 공룡집단을 다스려야 한다. 이는 지나간 시절의 군사정권과의 투쟁보다도 훨씬 어렵고 힘든 싸움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선진적 사회와 경제를 이룩하려면, 즉 억압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사회적 질서를 이루려면 국가는 재벌집단에 대한 통제와 견제를 통하여 사회적 균형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런 맥락하에서의 개혁은 다시 한번 시작되어야 하며 이 때에 김대통령은 한국사회의 개혁을 완성한 대통령이 아니라 시작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국사회의 대개혁을 이루기 위해선 대통령과 집권당이 스스로 환골탈태하여 민주세력과 개혁세력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며 차기 대권후보 는 이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물 가운데서 골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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