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현장-대구 십경

대구 십경(十景).

관동 팔경이나 단양 팔경은 알아도 정작 대구에 빼어난 경관이 그것도 10곳이나 있었으며 지금도그 일부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많지 않다.

대구십경은 일찍이 대구가 낳은 조선조의 대학자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명문의 시로 그 경치의 뛰어남을 노래한 대구 주변의 경관 10곳을 이른다. 이제 그 옛 풍광을 제대로 느껴볼 수 없음은 5백여년에 걸친 시간의 풍화때문이라 할지라도 십경을 노래했던 선인의 마음을 가슴속에 한가닥 자취로나마 남겨두지 못한 현실마저 망각 탓으로 돌리기엔 왠지 우리의 무심함이 너무 버겁다.

'금호강 맑은 물에 놀잇배 띄우고서 슬렁슬렁 더디 저어 백구(白鷗)랑 같이 놀다 달 아래 취해돌아오니 오호(五湖)는 물어 무엇하리'.

동촌 유원지와 노원의 백사장, 와룡산의 옥소암(玉沼岩), 강창의 절벽이 한데 늘어선 그림같은 경치로 지역민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았던 대구의 젖줄, 2백90리 금호강은 강변을 낀 정자와 누각,수면위의 놀잇배로 가득했던 십경중 으뜸. 그러나 지금은 수질오염의 대명사로 돼버린 죽은 강....세월이 무심타 할까.

'입암조어(笠岩釣魚.건들바위에서 고기낚기)'. 삿갓쓴 늙은이 형상을 한 중구 대봉동 건들바위는수도산 동록을 스친 신천이 한바퀴 돌며 물굽이를 이루던 곳. 대구시 기념물 2호로 지정된 이 바위 일대는 지난 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주위가 온통 미나리꽝이었으나 지금은 주택가로 변해버려 금(金)자라를 낚으리라던 옛 선비의 풍류를 접어둔 채 묵묵히 도시와 인심의 변천을 지켜보고있다. 주위에 자그마한 녹지와 분수, 조명시설이 돼있어 여름 한철 더위를 식히려는 행인들의 도심속 쉼터로 남아 그나마 십경중 하나였음을 새삼 일깨운다.

중구 봉산동 제일여중 한켠에 놓여있는 자라바위는 옛 문헌의 기록을 빌리면 봄구름 가득한 연귀산(連龜山) 정상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켜온 대상. 녹슨 울타리와 글씨조차 식별키 힘든 안내표지판 옆에서 자라바위는 이제 영험함 대신 학생들까지도 그 실체를 모를 만큼 초라한 돌덩이로퇴락하고 있다.

금학루(琴鶴樓). 중구 중앙공원 인근 대안동에 있었다고 전하는 금학루는 역대 대구지방의 방백과시인, 묵객들이 올라 밝은 달을 바라보며 시를 읊던 누각. 주위에 나무가 푸르러 학이 노닐 정도였다 하나 지금은 상가들이 차지했다.

십경중 제5경은 남소(南沼). 고질병을 없애 만백성을 고치기 알맞은 연꽃이 핀다던 남소의 위치를두고 지금은 사라진 영선못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지만 현재의 성당못이란 설이 유력하다.서거정의 시에서 남소와 지리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북벽림(北壁林)은 동구 도동 산 180번지에 위치한 측백수림. 향산 북쪽비탈의 높이 1백여m, 길이 6백여m 절벽에 자생하고 있는 측백수림은일제 말기와 해방전후 혼란을 틈탄 남벌에도 불구, 1백여그루의 군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숲이이미 지난 1934년부터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됐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서거정은 이밖에 동사심승(桐寺尋僧), 노원송객(櫓院送客), 공령적운(公嶺積雲), 침산만조(砧山晩照)라 하여 동화사와 팔달교 주변 나루터, 팔공산, 침산의 낙조등 4곳을 십경에 포함시키고 있으나 옛 풍류를 제대로 찾아보긴 힘들다.

지난 93년 대구시는 '2000년대 대구발전계획안'의 하나로 금호강 수질개선, 앞산등 풍광이 좋은곳으로의 자라바위 이전, 금학루및 침산 제단(악귀를 쫓는 의식을 치르던 제단)의 재건립등 대구십경을 최대한 복원키로 결정, 발표했으나 고증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만 4년이 다 돼가도록 계속사업으로 추진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온고지정(溫故之情)이라 했던가. 거창하고 구호조차 요란한 '향토문화 창달' 에 앞서 잊혀져가는대구십경을 마음 한자락 고이 접어 간직하는 '문화적 자존심'을 가져봄직한 설이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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