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보태풍에 찢기는 여권

한보사태가 터지면서 현 정부와 여당 핵심인사들간 낯뜨거운 책임떠넘기기 또는 모르쇠'경쟁'이점입가경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지난 95년 당진제철소 준공식에 김영삼대통령의 참석을 누가 권했느냐를 두고 벌이는 설전은 김영삼대통령이'장관이 권유했다'고 밝혔음에도 부인이 계속되는 등 끝간데 없는 추한 드라마로 진행중에 있다.

김석우통일원차관(당시 의전담당비서관)은 지난 1일,"당시 박재윤통산부장관이 참석을 권했다"고말했다가 박씨가 이를 강력 부인하고 나서자 잇따라 발언을 번복하는 소동을 벌인바 있다. 김차관은 한때는"경제수석실(당시 한이헌수석)에서권유한 것 같다"고 말했으나 당시 경제수석실은 펄쩍 뛰고 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5일 해외공보관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당진제철소 1단계 준공식때 장관이 몇차례나 참석해 달라고 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며"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고 소개했다. 김대통령의 언급에 따르면 어느 부처 장관인지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주무장관인통산부장관을 지칭한 것이 분명해보이며 따라서 박씨에게 다시 시선이 쏠리고 있다. 박전장관은그러나 김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이 전해진 뒤에도 "절대로 대통령에게 참석을 건의한 바 없다"고여전히 부인했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관계자는 10일"그렇다면 대통령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말이냐"며 "막상 한보돌풍이 불자 모두가 벗어나고자 '악다구니'를 쓰는 꼴"이라고 혀를 찼다.

뿐만이 아니다. 95년 2월 한보철강이 코렉스공법을 채택할 당시 기술도입 신고서가 통산부에 들어올 때 장관이기도 했던 박씨는 또 "과장 전결사항이기 때문에 보고받은 바 없다"고 주장하고있다. 결재 라인에 있던 당시 한 국장도"코렉스라는 용어는 당진제철소 1단계 준공식이 있던 95년 6월에 가서 처음 들었다"고 발뺌했다. 국가 기간시설이 통산부 과장 한명의 판단으로 채택되고 집행되었다는 얘기다.

이 정도라면'무정부'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압 여부에 눈총이 따가운 정치권 또한 책임 전가및 발뺌하기로 일관하고 있다.이미 한보로부터 7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신한국당 홍인길의원은 여전히 받은 바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가신그룹에 속하는 그가 "나는 깃털에 불과하다"며 '윗선'의 또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관측을 촉발시킨 이래 김대통령의 가신그룹이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간의 상호 중상모략또한 심화되고 있다.

한보태풍이 소위 문민정부의 외양을 벗겨냄에 따라 여권의 추한 몰골이 그대로 노정되고 있는 셈이다.

〈裵洪珞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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